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김여화 너를 보내는 들판에 마른 바람이 슬프고/ 내가 돌아선 하늘에 살빛 낮달이 슬퍼라/ 오래토록 잊었던 눈물이 솟고/ 등이 휠 것 같은 삶에 무게여/ 가거라. 사람아 세월을 따라/ 모두가 걸어가는 쓸쓸한 그길로/ 이젠 그 누가 있어 이 외로움 견디며 살까/ 이젠 그 누가 있어 이 가슴 지키며 살까/ 아~~저 하늘에 구름이나 될까/ 너있는 그먼땅을 찾아 나설까/ 사람아 사람아 내하나의 사람아/ 이늦은 참회를 너는 아는지 임희숙 1950년 태어나 편모슬하에서 성장했다.1967년 데뷔 곡 ‘그 사람 떠나가며’를 발표하고, 워커힐 무대에 이어 TBC TV의 ‘ 쇼쇼쇼’, ‘ OB카니발’, 동아 방송 등 방송에 출연해 팝송을 주로 부르며 알려졌다. 1968년에는 여고를 졸업하고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하였으며, 1970년에 발표한 김희갑곡‘ 진정 난 몰랐네’가 빅 히트가 되었고, 이 노래는 그녀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리는 도화선이 되었고. 이후 우여곡절을 겪으며 1984년 5월, 재기 곡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를 발표했다. 이 노래도 고단한 삶과 그녀의 아픈 과거가 호소력 짙은 그녀의 보컬과 어우러지면서 빅히트했다 한다. 나는 임희숙의 쉰 듯한 목소리가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특히 “내하나의 사람은 가고” 이 노래를 주부가요열창에서 장원한 주부가 남편을 여의고 가슴 절절히 이 노래를 불러 화제가 되었다. 그전에도 주부가 불러 히트한 뒤에도 나는 애창곡으로 간직하고 다닌다. 사랑하는 이을 떠나보낸 후의 애잔한 심정을 누가 알까? 참으로 슬픔을 승화시킨 노래가 아닌가싶다. 요즘에 나는 혼잣말로 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16년간을 사랑했던 일이었다. 사람은 아니지만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일하며 봉사했고 최선을 다하며 양심을 지키며 살아왔다. 그렇게 즐겁게 일했던 봉사했던 일을 내놓고 보니 시원섭섭하다는 말이 맞다. 시원하다. 앓던 이를 뺀 듯 한 후련함과 이제는 쉬어도 되겠다는 안도의 한숨에 혼자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왠지 끝내는 날의 서툰 이별 식인가 사람들의 의심하는 발언들을 듣고 나니 그동안 왜 내가 그렇게 못잊어하고 무슨 대가를 바라고 했던가 라는 자괴감과 짝사랑 같은 내하나의 사람을 보내버린 아쉬운 감정에 휩싸인다. 눈물이 나온다. 그동안 애썼다는 말보다는 마치 내가 공금을 횡령한 듯한 발언에 울분을 금할길없다. 뉴스에서 목숨을 끊었다는 교장선생님의 이야기가 남의일 같지 않게 들린다. 물론 당시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한척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화가 난다. 후회막급이라는 생각까지도, 갑자기 사람들이 미워지고 보기도 싫고 말도 섞고 싶지 않으니 그런 억울함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않으면 우울증이라도 올 것만 같다. 그렇게 애써 봉사랍시고 해 왔던 모든 일이 한낮 봄날의 잔설 녹이듯 땅속에 스며들어버린 느낌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런 거였구나. 내하나의 사람을 보낸 뒷맛이, 쓰디쓴 맛, 문득 ‘내하나의 사람은 가고’를 부른다. 혼자서 큰소리를 내며 불러본다. 내하나의 사람. 지금껏 봉사해온 일이 사람은 아닐지라도 가슴 아프다. 다시는 못올길을 떠나보낸 사람보다 더 깊은 애잔함이 남고 목울대에 울컥 뜨거움이 올라온다. 그게 사람이라는 걸 왜 나는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기억도 못하는 출발점에서 막다른 지점에 이르러 돌아보니 공은 없고 밀려오는 자괴감만 남았다. 알아서들 해보라고 했지만 지나간 세월이 내겐 멍첨지였다는 것을 오늘에야 깨닫는다. 열 사람의 치하보다는 한사람의 질책이 오늘 이렇게 가슴 아플 줄은 정말 몰랐다. 후세의 사람들이 공을 치하한다고 한들 무슨소용 있겠는가? 해마다 힘들었던 순간들이 떠오르고 불편했던 생활들을 감내했던 모든 순간들이 이제는 해방이 되었다. 그런데도 가슴에 남겨진 생채기가 쓰리다. 이제는 준비하며 노심초사 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상관하지 않아도 되고, 다 들 잘 할 텐데 나는 왜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것처럼 애잔함이 밀려올까? 그만큼 내가 독선을 했다는 말인가? 그 독선이 나를 위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서글프다. 내 마음을 누가 알까? 전직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 대통령 못해먹는다는 발언을 놓고 말도 많았다. 오죽했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싶어 대통령이 안돼 보였었다. 나라살림이나 집안 살림이나 자식이나 며느리가 성혼해서 일가를 이루면 부모는 뒤에서 뒷배나 봐주고 앞이나 둘러줄 일이다. 사사건건 상관을 하면 자식도 부모 믿기를 거부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품안에 자식이라고 아이들일에 간섭하면 아이들이 모로 나간다. 나는 모로 나가는 길 보다는 짐을 벗어던졌다. 참으로 오랜 세월 최선을 다해왔던 일에서 손을 놓겠다고 했다. 마지막 돌팔매 같은 질책만 없었더라면 이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 듯한 애잔한 슬픔은 없었으련만……. 이제 내하나의 사람은 갔다. 아니 보내버렸다. 아, 저 하늘에 구름이나 될까? 사람아, 사람아 내하나의 사람아 뒤늦은 후회를 너는 아는가? 내 자신도 모를 후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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