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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야기

[스크랩] 내것 아닌 열쇠꾸러미

by 운경소원 2009. 8. 26.

내 것 아닌 열쇠꾸러미


김여화


  요새 갑자기 열쇠꾸러미가 가벼워졌다. 서너 개 매달린 열쇠를 며칠 전 주인에게 돌려주고 나니 왠지 허망했다. 이제 다시는 그 집 사무실에 내 맘대로 열고 들어 갈수 없다는 생각이 미치자 주지 말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그동안 필요하면 내 맘대로 열고 들어가 차를 마셔도 되었고 잠시 쉬었다가 와도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어 편하고 좋았는데 이제 열쇠를 주인에게 돌려주고 나니 남의 걸 맡았을 때의 책임감도 벗어나고 홀가분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기분이 묘하다.

  

자동차 키를 자주 잊어버리는 편이라서 회사차 열쇠를 거금 오천 원이나 들여 만들었고 필요 할 때면 수시로 열고 편리하게 썼건만 이제 그 예비열쇠도 필요가 없게 되어 빼주고 나니 꾸러미가 가벼워졌다. 거기다 자동차 열쇠와 더불어 사무실 열쇠도 주고 나니 더욱 가벼워진다. 내 것 아닌 남의 열쇠를 여러 개 내 것인 양 지니고 다니며 속내로는 으쓱거렸던 내게 주인에게 돌려주고 남은 건 이제 자원봉사센터 사무실 열쇠만 남았다.

 

 예전에는 돈 있는 사람들이 딸 여울 때 열쇠를 세 개정도는 해주어야 한 대서 아파트 열쇠 자동차 열쇠 또 뭐가 있더라. 아무튼 세 개는 해주어야 한다는 말이 회자 되었다. 오래전에 새마을 금고에서 근무 할 때 저금을 하러오는 고객이 열쇠꾸러미를 무겁게 들고 오는걸 보면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 얼마나 가진 게 많으면 열쇠를 저리 무겁게 많이 매달고 다니는지 참으로 부러운 눈길을 보내곤 했다.

  나는 자동차 열쇠를 하도 잘 잃어버려서 자동차 바퀴 밑에 매달아 비상시 사용하도록 만들어 주었지만 그마저도 빼내지 못하고 결국은 직장에 근무하는 남편이 달려와 풀어 줄 정도로 열쇠 때문에 받는 고통은 크다. 그래서 요샌 휴대전화에 여벌의 열쇠를 매달아 가지고 다니며 또 한 개는 집 어딘가에 여벌의 열쇠를 장만해서 보관해 둔다.

 

 남들처럼은 아니지만 나도 예전에 보았던 사람들처럼 열쇠를 적어도 두 개 세 개 정도는 매달고 다니는 것이 요즘의 나다. 거기다 회사 사무실 열쇠와 사무실 차량열쇠까지 합하니 두 꾸러미를 들고 다니기 일쑤였다.

 

러던 것이 요새 열쇠를 다 풀어서 주인에게 돌려주고 나니 남은 건 겨우 자원봉사센터 사무실 열쇠 하나와 내 자동차 열쇠 두 개만 남게 된 것이다.

당연히 돌려주어야 할 걸 돌려주었는데 왜 난 섭섭한 것일까? 이제 소용 닿지 않으니 돌려주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왜 나는 열쇠를 돌려주고 나서 미련 남은 것처럼 마음이 수런거리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회사열쇠를 가짐으로 해서 예전에 부러워했던 걸 작게나마 보상받는 것처럼 느꼈나보다. 별스러운걸. 다 부러워서 부자 같았던 마음이 열쇠를 주고 나니 허전한 것이다.

  

주인이 달라고 해서 준 것이고 회사를 그만두게 되니 당연히 돌려주어야 하거늘 주고 나니 울컥 무언가 치민다. 야릇하다. 시원하게 떠나는 것이 무에 그리 아쉽더란 말인가? 사실 더 나은 직장으로 옮기는 것인데도 그동안 정든 탓일까? 내 인생에 큰 족적을 남기게 만든 직장이었다. 3년 전 년말에 6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더 이상 나오지 말라는 말에 앞이 캄캄했던 기억이다. 일주일동안 집에 있는데 얼마나 암담하던지 갑자기 밀려드는 좌절감에 빠져 우울증이 왔을 정도다. 그때 동생에게 나 모가지 나갔으니 취직 좀 시켜주라고 전화를 했는데 이틀 만에 연락이 왔었다. 내일부터 나오라는.

  

조건은 우선 내 고물자동차가 필요 하다는 것이었고 그걸 운전하려면 운전기사가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급작스럽게 새로운 직장을 잡았다. 그렇게 들어간 복지센터는 올해로 3년째다. 이제는 제법 노련한 유급봉사원이 되어있는데 사람이라는 것이 말사면 종사고 싶다고 조금 더 편하고 보수가 많은곳을 찾다보니 다시 새로운 직장을 잡게 된 것이다. 이제는 안주하고 싶은 것이 소망이지만 삶에 찌든 우리네 형편이 그렇게 녹녹치 않기 때문에 별수 없이 새로운 직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봉사도 사실은 내형편이 여의치 않으면 소용이 없다. 내가 곤곤한 처지인데 봉사활동을 한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같은 시간에 보수가 많은 쪽으로 찾아 떠난다. 올해 들어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여럿이 떠나갔다. 나 역시 그중에 하나다. 하지만 자리라는 것도 내가 옮기고 싶다해서 쉬이 얻어지는 것도 아니기에 가지고 있는 열쇠를 다 던져주고 옮겼다.

그 나이에 그런 직장 얻기가 어디 쉽냐고 주변에 축하받기에 바빴다.

  

새로 얻은 직장의 열쇠는 아주 작은 것이다.  손가락 사이에서 빠져나갈 염려도 있다. 그것도 카드와 함께 써야만 하는, 열쇠에 얽힌 여러 가지 사연들은 이제 묻혀가게 되었다. 손에 든 열쇠를 바라보며 하도 하찮해보여서 웃음을 물게 된다. 내 열쇠 꾸러미는 그렇게 변하고 있다.

출처 : 임실문인협회
글쓴이 : 소원/김여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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