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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야기

[스크랩] 밥 할 줄 아세요?

by 운경소원 2009. 7. 10.

밥 할 줄 아세요?


김여화


  배가 고픈 줄은 알지만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밥을 직접 하는 법은 없다.


밥이 있으면 그저 수저하나 준비해서 국물만 떠먹고 밥 한 그릇을 다 먹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배가 고프다고 말을 하지 않는다. 밥이 없으면 그냥 굶어버리면 그만이다. 음식이 무엇이 맛있는 건지 알지도 못하고 된장국만 있으면 김치도 필요 없으며 무엇 무엇 음식을 찾지도 않는다. 아예 다른 먹을 것을 찾지도 않기 때문이다. 먹고 싶은 음식이 없다는 말이다.


  어쩌면 그럴 수가 있을까? 참으로 묘하다. 우리네 같이 배고프면 당장에 죽을 것처럼 못살겠다고 난리를 치고 배를 움켜쥐고 쓰린 속을 달래기도 하련만 이 노인은 그럴 줄을 모른다. 아니 알면서도 그저 참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여자라면 다 할 줄 알고 해야 하는 밥하는걸. 마다한다. 아니 마다하는 게 아니라 아예 안한다.


  세월은 많이 쌓여서 이 노인의 나이는 9학년 3반이다. 구십 셋이라는 말이다. 더러 지금에야 나이 들어 못하겠지 해서 젊어서는 밥을 했을 거 아니냐고 물어보지만, 아들은 절래 절래 고개를 흔든다. 엄마가 밥을 해 준적이 없다는 말이다. 이날 이때까지 내가 밥해 먹었다는 말이다.


  하루가 가는 것이 여느 노인들처럼 버겁지도 않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 죽겠다는 말도 안한다. 아예 삶에 대한 의욕도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흔히 노인들처럼 얼른 죽겠다고 말하는 법도 없다. 여느 노인들처럼 아프다며 병원엘 가는일은 더더욱 없다. 세상만사가 뜻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밥한 그릇을 다 비운다는 말이다. 그렇게 국물만 먹고도 변비도 안 생길까 싶을 정도로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이 신기하다.


  대체로 노인들은 이가 없어서 잇몸으로 대충 씹어 넘기기 때문에 소화 불량이거나 아니면 국물만 먹기 때문에 섬유질이 부족해서 변비로 고생을 하는데 이 노인은 그런 내색도 없다.


  사실 말이지만 우리도 밥하기 싫을 때가 많다. 굶어 버릴까 하다가도 뱃속에서 꼬르륵 거리면 당장에 먹을 것을 찾고 급하면 라면이라도 끓이든가 더 급하면 생쌀을 조금 씹을 때도 있는데 이 노인은 그렇지도 않다는 말이다. 어쩌면 모정이라는 것도 없어 보인다. 자식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 먹이고 싶은 마음 말이다.


  주념부리를 하는 것도 아니다. 이가 부실해서 씹을 수가 없기 때문에 단단한 것은 먹지도 못하고 이가 시려서 찬 것도 먹을 수 없으며 커피 같은 뜨거운 것은 식혀서 마시기도 하고 대체로 음식을 잘 먹지는 못하지만 밥만은 한 그릇씩 먹는다는 말이다. 그것도 된장국이든 다른 찌개 국물이든 국물이면 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절대로 국물에 밥을 말아서 먹지는 않는다. 진밥보다는 된밥을 좋아한다는데 그렇다고 치매가 온 것은 아니다. 노인은 아들이 술을 먹고 왔는지 술을 먹으러 동네로 내려가는지 다 알기 때문이다. 아들이 여러 가지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지만 혼잣말로 중얼거리기는 한다. 또 술먹고와서 잔소리 한다는 말이다.


  만날 술 먹고 잔소리 한다는 건 아들의 안색을 살피고 짐작하고 하는 말이다. 이 여름에도 더위를 느끼지도 못하고 겨울옷을 입은 채로 벗지 않고 당신의 몸에 손대는걸. 싫어해서 머리를 감길 수도 빗길수도 없다는 말이다.  달래고 수건으로 닦아주면 내가 할 수 있다고 뿌리치기는 하면서도 그렇게 쉽게 씻거나 머리를 감는 일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씻지 않는다고 해서 노인들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 특별하다. 어쩌면 내가 가지 않는 날을 택해서 아니면 아들이 없는 틈에 씻는 것인지 아들도 모른다고 하기 때문에 짐작 할 수도 없다.


  노인은 젊어서부터 일도 하지 않았고 밥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우리들의 통상적인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떻게 배고픈 줄을 모른다는 말인가? 오래 살아서 밥을 하기 싫은가보다고 여겨왔는데 주변사람들 말이 젊어서도 그랬다는 말이다. 믿어지지 않는 말이다.


   밥을 못할 거란 말에는 이의가 있다. 노인은 전기압력밥솥에서 딸랑거리는 소리가 그치고 김이 빠지는 소리를 듣고 뜸이 덜 들었다거나 밥이 아직 안됐다는 건 안다는 사실이다. 늘 아들이 밥을 할 때 보아 와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전기압력솥을 처음 써보는 내게 밥이 아직 안되었으니 기다리라는 말을 하는 걸보면 밥을 할 줄 안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 밥이 없어도 배가 고파도 밥을 직접 하지 않는 걸까?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대목이다. 일찍이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살아왔다는데 환갑넘은 아들이 해주는 밥만 먹었다는 말이다. 왜 밥을 하지 않느냐고 물어봐도 대답은 하지 않는다. 귀찮으면 몰라이고 대답하기 싫으면 몰라이다. 무조건 당신의 몸에 손대는걸 싫어하지만 잘가라는 인사정도는 할 줄아는 노인이다. 그것도 일본말로다. 아리가도 고자이마스, 사요나라 고마워 할 줄도 아는데 잘가라고도 하는데 무엇이 이 노인에게서 밥하는 의무를 포기하도록 만들었을까?


  

출처 : 임실문인협회
글쓴이 : 소원/김여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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