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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야기

[스크랩] 물 반 쓰레기 반

by 운경소원 2009. 7. 10.

물 반 쓰레기 반


김여화

   

   섬진강가에 서면 푸른 물이 나를 반기고 거기 여름 볕에 그을린 바윗돌이 시꺼먼데 의례 강가에는 자귀 꽃이 볼을 붉히고 원추리 꽃 샛노란 빛깔이곱게 물든 던 곳이다. 섬진강 달빛아래 시름 놓고 정나눈 사람들아. 내 사는 곳 섬진강 최상류라지만 한 번도 붉덩물 불어 배 채우고 춤추는 섬진강을 본 것은 난생처음이라. 문득 붉덩물로 배 채운 섬진강을 지나다가 생각나는 사람 있으니 그 사람 만나러 가는 길목에 물 반 쓰레기 반인 섬진강을 바라보고 몸 둘 바를 모를 만큼 미안한 마음뿐이더라.

  섬진강 물 가에서 젓대소리에 귀 기울이고 사는 사람아! 흙탕물이 저리 아우성을 치면 그때도 젓대소리 들리는가? 지리산 골짜기마다 몸 풀어 쏟아내는 물보라에 어느새 섬진강은 통곡하며 스란치마를 펼치고 앉았다. 섬진강 쪽빛 물 유유히 흐르던 백사장에 내 집 마당에서부터 흘러갔을 황톳물이 저리도 덤턱스럽게 쓰레기 더미를 끌어안고 소릴 지르고 있으니 참으로 애석하도다.

  평사리 백사장 대숲에 걸린 쓰레기 더미는 혹시나 우리 마을에서 떠내려간 것일런가? 부끄럽기만 하여라. 아서라, 지난해부터 우리 동네 섬진강은 가뭄으로 목말라했고 우리 동네 내린 비는 생수터진정도에 그쳤으니 저기 쓰레기 더미에 보태졌을 리 없다. 천만 다행이다. 섬진강 다목적댐은 수문을 열어젖힐 때까지는 아직도 먼, 옥정 호는 그렇게 물이 밭았구나. 오원 강에서 적성강, 압록에서 보성강과 살을 섞고 주암댐 상사호 조정지 댐에서 열린 수문으로 넘쳐나는 흙탕물과 쓰레기가 평사리앞강까지 밀려왔도다. 언제부터였든가 평사리앞 강이 저리도 넓었더란 말인가 예전에는 그저 백사장이려니 여긴 터에 장마 지고 남도에 폭우가 쏟아 붓고 난 오늘은 정신 줄 놓은 여인네 같다.

  얌전하기만 했던 섬진강이 오늘은 치맛자락 훌레훌레 붉덩물에 적시고 퍼질러 앉아 윗동네사람들이 버린 쓰레기 더미 걸린 곳마다 퉁퉁 부은 몸뚱이가 되었구나. 참으로 민망한 풍경이다. 우리 동네 오원 강에 냉장고가 떠다니고 돼지가 떠내려갔던 어느 해 장마 통에 그 무섭던 흙탕물이 오늘 여기 섬진강을 가득 채웠구나. 넋 놓고 그저 쓰레기가 떠내려가 바다와 한 살이 되게 기다리기나 해야 할는지.

  섬진강을 구경하자니 새삼스레 걱정거리가 생겼다. 저 많은 쓰레기는 누가 건 질것인가? 건져내고 바다로 보낼 것인가? 아니면 쓰레기조차 함께 보낼 것인가? 하동사람들은 오지랖도 넓어야 갰다. 해마다 저렇게 들뜬 아낙네 정신줄 놓은 여인과도 같은 강을 보면서 얼마나 분을 삭이고 사는지, 그래도 맑은 물 흐르는 강변에서 젓대소리에 시 한줄 읊는 사람이 있으니 그나마 천만 다행이다. 강가에 그 라도 없으면 그 서글픈 마음을 누가 달래주랴?

   윤오월 보름달도 구름에 가려 나서지 않는데 검은빛 육중한 골기와 지붕아래 달빛을 끌어내려 마당에 앉혀놓고 뜻 맞는 사람들 불러놓아 맑은 술 한 잔에 시름을 달래는 사람들아 그 정다운 밤을 어찌 잊으랴. 수 만군 모기를 풀어 손 객을 맞는 주인이여. 목울대를 적시는 술 한 잔 달기만 하여라.

 달빛 이울어질 그 밤 안타까워, 빗소리 반주삼아 도란거리는 사람들아. 꽃담 안에 가둔 그대들의 도타운 정을 오롯이 가슴에 안고 떠나오는 으슥한 밤 눈 비비며 잠에 취했어도 정다운 목소리는 여운으로 남아 내 꽁무니를 따라오는구나.

  붉덩물이 저리 며칠 흘러간다면 평사리 모래 속에 숨은 재첩새끼 다죽는다고 분통 터트리는 사람아! 해마다 그렇게 화를 내면서도 장마가 지나고 나면 아름다운 쪽빛물 흰백사장으로 물들여놓고 밑에 사는 설움이라 하늘의 뜻이라 여기고 다소곳 손 객을 맞는 평사리 사람들아! 그렇게 쓰레기 더미를 보면서도, 넘쳐나는 붉덩물을 보면서도 마음비우고 앉아 기다리기에 계절이 바뀌면 아름다운 섬진강을 노래하며 젓대소리에 귀 기울이며 삶을 논하는가보다.

  지리산 형제봉 잔설 속에 피어나는 매화로 단장한 사람들아! 푸르른 송림의 솔바람에 여름을 만끽하고 강이 퉁퉁 부어터질 것 같은 시련 겪으면서도 벗님 불러 황차 한잔 나누면서 시름을 잊고 사는가? 평사리가 황금빛으로 터지게 배부른 날 기다리며 허수아비 떼 지어 굿판 벌여놓고 참판댁 사랑채 누각에 앉아 굿 보는 사람들아! 언제부터였던가 나는 식솔처럼 정이 들고 덩달아 배부른 삶이 되었도다.

  섬진강을 보려거든 물 반 쓰레기 반일 때 보아두라. 평사리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밑에 사는 사람들의 지혜를 배울 것이다. 최상류에서 버리기만 했던 나를 돌아보며 해마다 겪는 밑에 사는 사람들의 애환을 보았나니 이제 그들의 노래에 갈채를 보내리라.

  


출처 : 임실문인협회
글쓴이 : 소원/김여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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