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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야기

[스크랩] 세월이 주저앉았다.

by 운경소원 2009. 7. 3.

세월이 주저앉았다.

김여화


  종일 비가 오락가락 장마라더니 비다운 비도 아닌 것이 하늘만 낮게 내려앉아서 아직은 오후 샛참때나 되었을 텐데 어두워 졌다. 고샅은 벌써 해 저문 산 그림자가 내린 양 으스스 하기까지 한다. 퇴근하면서 사거리 고샅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데 운전을 하다 돌아보니 우산만 걸어온다. 검의 튀튀해서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보였고 순간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자동차의 속력을 더 줄이면서 돌아보니 아랫집 형님이다.


  하도 사람이 작아서 우산만 걸어오는 것처럼 보인 것이고 도무지 사람의 얼굴도 아니보이고 천천히 생각해보니 허리가 굽은 노인이 힘이 없어 비틀거리고 노인의 키가 작으니 겨우 우산하나 펼 정도로 노인의 키가 작아져 있었던 것이다. 후유, 나는 한숨을 몰아쉬고 짧은 고샅을 잽싸게 달려와 마당에 차를 세웠다. 하지만 우산만 펼쳐져 걸어오던 노인은 막 사거리 고샅을 지나고 있다.


  언제부터였던가 몇 년 전에 골다공증이 심하다고 해서 몇 번 출근하면서 모시고 병원엘 간 적이 있고 한때는 농사지으며 모시고 있던 자식이 노인을 모시기 싫다고 해서 도시서 살던 아들네 집으로 가셨다가 다시 마을의 빈집 한 칸을 얻어 새로 수리를 하고 혼자서 살아왔다. 그러다가 애초에 노인이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가서 다른 아들네들이 경매에 응찰하여 다시 되찾게 되었다. 물론 꼴 보기 싫다고 농사짓다가 달아난 아들이 빚이 많아 집이 경매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요즘 농촌의 집들이 경매 한번 안 들어간 집이 없다. 모두 농사짓다가 빚만 곡괭이로 지고 도시로 탈출하듯 도망가 버리면 다른 자식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으거나 빚을 얻어 넘어가던 고향집을 잡아주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왔다. 이 노인의 집도 그 경우다. 다행이 큰아들이 일요일이면 와서 노인 혼자 살기 불편하지 않게 봐주고 가는 것이다.


  물론 큰아들네집에가서 살아도 며느리가 마다하지는 않지만 이분은 큰아들네집에가서 살겠다고 주장할 처지도 못된다. 그래도 큰며느리는 우리 집에 와 계시라고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노인이 아파트에 못살아 마다시는 것이다. 하긴 젊었을 때 어찌나 큰며느리를 구박하고 먹을 것도 눈치를 주어가며 군불을 때는 것마저도 며느리 마음대로 못하게 하면서 일찍이 한동네서부터 제금 살던 사람들이다.


  왜 그렇게 큰며느리를 구박을 했는지 자세한 건 알 수 없지만, 처녀총각때 하필 한동네서 정분이 났고 일찍 아들 아닌 딸만 셋을 난 것도 구박의 원인이며 당신이 시어머니 시집살이로 늙어서 대물림 한다는 것이었다.


  하여튼 큰며느리는 이 노인을 모신다고 하지만 당신이 절대로 아들네집서도 안 살겠다는 것이 혼자사는 이유다. 나이가 팔십이 넘었는데 그 불 호랑이 같던 노인은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하여 그저 한 끼 밥 해먹는 것도 당신이 손수하지 않으면 이어갈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병원에 자주가시고 어쩌다 아랫동네 보건지소로 약을 지으러 가셨다가 도로가에 앉아있으면 내가 차를 세우고 모시고 온 적이 여러 번이다. 이렇게 모셔다 드리면 노인은 차비 천원이 굳은 것을 참으로 크게 여기신다.


모시고 살던 아들은 빚을 많이 져서 파산신고를 하고 도시로 도망을 쳤다. 어머니가 살 집한 칸도 건지지 못하고 경매 처분하도록 만들고 함께 살적에도 조선족 며느리 특유의 게으름으로 아들며느리 밥 다해 바치며 셋이나 되는 손녀들 뒤치다꺼리를 다했지만 결국은 당신 한 몸 살집도 없이 쫓겨났던 것이다.


  마을의 조선족 며느리들은 밥을 해 먹지 않고 시어머니들이 밥을 한다는 것이 요즘의 농촌 실정이다. 일흔일곱이나 자신 다른 노인도 이날 이때까지 손수 쌀을 씻어 밥을 해먹는 형편인데 차라리 자식들이 다나가고 혼자 사는 것이 편타고 할 정도다. 아침에도 우리형님은 누구는 며느리가 어떻고 누구는 어떻고 동네 소식을 전해주고 가셨다.


   마실을 잘 나가지 않는 나는 유일하게 형님이 소식통 역할을 해주시는데 조금 전 우산 속에 고샅을 걸어오던 노인도 집안 형님이시다. 해서 마을에서는 겹사돈도 많고 시댁으로 형님이라고 해야 할 노인이 또 사돈지간이 되는 경우이다.


  내가 시집왔던 때 노인은 부잣집 마나님이었다. 체격은 작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서리고 자식들이 끄럭끄럭해서 고샅이 쩡쩡 울릴 정도로 힘 있는 집이었다. 내가 그 집 논을 사고 이전하는데 그 집 자식들의 인감이 필요하고 도장이 필요해서 떼어달라고 하면 어찌나 눈에 힘이 들어가고 목소리에 힘이 세었던지. 그런데 그 집 자식들이 전체가 인감을 한꺼번에 떼어주어야만 하는데 다 제각각이었으니 석 달만 지나만 먼저 떼어다 놓은 인감은 못써먹게 되고 그래서 나는 그때마다 부탁을 하러다녔고 노인은 컬컬스럽게 호통을 치셨다.


  세월은 노인의 눈에서 힘을 빼버렸고 목소리도 작게 만들고 작았던 키는 더 작게 겨우 우산 하나 펼친 높이로 만들어 버렸다. 그때는 허리도 굽지 않고 꼿꼿이 서서 큰소리로 고함을 쳤지만 요즘 가끔 만나면 애기목소리로 변했다. 오늘처럼 우산을 펼치고 걸어오니 고샅에는 우산이 걸어오는 것 같만 같다. 내가 본 삽십여년 세월 노인의 세월은 낡고 삭아 주저 앉아버렸다.





출처 : 임실문인협회
글쓴이 : 소원/김여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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