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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야기

[스크랩] 누가 마음에 빚이라고 다 그리하랴?

by 운경소원 2009. 6. 7.

누가 마음에 빚이라고 다 그리하랴?


김여화


  맛난 점심을 먹었다. 배고프면 다 맛이 난다고 하지만 뜻 깊은 자리에 뜻밖에 대접을 받고 보니 참으로 뿌듯한 마음으로 기분 좋은 점심을 먹은 것이다. 엊그제 S면장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점심을 함께 했으면 한다는 말씀이셨는데 생각하기를 면장님께서 내게 무슨 볼일이 있으신가. 궁금해 하다가 누구 요양대상 어르신이라도 있으신가 싶어서 약속날을 잡았다.

  내가 일하는 대상지역인지라 어르신들이 혹시 우리센터로 오시고자 하실 것이라는 생각으로 면장님 저는 짝꿍이랑 함께여야 하는데요. 했더니 당연히 그래야지요 하시는 게다. 보통은 점심을 먹자는 분들이 지위가 있으신 분들이거나 정치인 같으면 정중하게 거절하고 마는데 평소 친절하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S면장님이라면 뭔가 부담은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 흔쾌히 대답을 하게 된 것이다.

  아침까지도 왜 면장님이 날 부르시는지 궁금해서 함께 점심을 하기로 했다는 분에게 전화로 확인을 했다. 왜 면장님께서 날 보자시는지 심히 걱정스럽고 궁금하네요. 그랬더니 “아, 부담 갖지마세요. 그분이 곧 정년퇴임을 하시기 때문에 우리 모임에서 전에 면장님께 상을 드렸던 일이 이제라도 감사의 표시를 하고자 하신답니다.”

  아, 우리모임, 광주에 본부를 두고 91년에 임실지구를 창립하고 대여섯이 시작해서 한때는 30여명의 회원을 확보 할 정도로 번성했던 모임이다. 바를 정자, 벗우자를 써서 정우회라고 하는데 임실지역은 현재 회원이 열 명만 남아있다. 함께 했던 분들은 퇴직하고 연로하신 분들이 자연 탈퇴를 하고보니 회원을 더 이상 늘리지 않고 그대로 있는 모임이다.

  언제였던가. 어느 해인지 기억도 없다. 우리 나름의 지구회의 자본을 만들면서 십시일반으로 회비를 걷고 본부지원을 받아. 효자, 효부, 청백리, 장학생을 선발해서 조촐히 시상금을 전달해 온 것이 올해로 열여덟 번째이다. 그 면장님은 당시에는 계장님이셨을 테고 세월이 흘러서 면장이란 직책도 내놓아야 하는 정년에 이르신 것이다.

  상금도 겨우 20만 원 정도로 상장하나 달랑 주기도 했고 형편이 좋을 때는 상장을 상패로 바꾸어서 전달하기도 했고 그렇게 해온 것이 올해 18년째이며 그동안 시상금을 전달한 것은 1200만원이 넘게 되었다. 그래도 전해주는 나는 잊어버렸다. 그동안 70명 넘게 해마다 연례행사로 이어온 일이기에 그분이 전에 청백리 시상 수상자라는 사실도 잊을 만큼 햇수도 지난 것이다. 당시에 그분은 자격이 못 된다 시며 사양하셨던 걸로 기억된다.

  이제 정년을 하기 전에 그동안 마음의 빚이 되었던 당신의 뜻을 조촐하게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말씀에 할 말이 없다. 그때는 정말로 감사하고 고마웠지만 마음뿐으로 언젠가는 갚아야지 했지만 몇 해가 흘렀다는 말씀이다. 그때 상금을 안 받아야 하는데 그 즉시 돌려준다는 것도 도리가 아니고 미루다보니 지금까지 마음이 무거웠다는 말씀이다.

  5,6년이 되었는가? 지금까지 마음에 무거운 빚을 얹고 이제 더 늦기 전에 면장님이 퇴임하기 전에 정리하고 싶으셨다는 말이다. 황송하다. 면장님은 그때 받았던 상금에 이자를 얹어 주셨는지 봉투가 두둑해 보인다. 나는 봉투를 만지며 너무 많이 주신 거 같은데요. 했더니 이자쬐금 보탰습니다. 하시며 멋쩍게 웃으신다.

  더불어 하시는 말씀, 어떤 분이 면장님이 청년시절에 취직을 시켜주겠다고 하시고선 쌀두가마를 가져가고 취직도 못하다가 면장님은 군대로 입대하셨다는 말이다. 면장님의 선친께서도 여러 차례 그 쌀 두가마값을 받고자 찾아갔지만 돌려받지 못하고 세월은 35년이 흘렀단다. 2003년인가 낯선 노인, 머리가 허연 할머니가 찾아와 옛 일을 이야기 하시며 쌀두가마 값으로 현금 5십만 원을 들려주셨다고 한다.

 그 할머니는 남편이 저지른 일에 대한 속죄를 당신이 죽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한다며 찾아오신 거라고 했다한다. 면장님은 그때 할머니가 주신 돈 50만 원 중 쌀두가마 값을 제외한 2십만 원을 할머니께 다시 돌려주고 35년 전에 일을 회고하며 눈물을 흘리셨다는데 세상이 다 못된 마음을 갖는 건 아니라는 말씀이다. 오죽했으면 남의 돈을 떼어먹고 받으러 가도 주지 않았겠느냐고, 이런 양심이라면 그때당시에는 정말로 돈이 없어서 못준 것이라고 믿는다고 하셨다.

  그래도 그렇지요. 받은 상금 그것도 몇푼되지 않은 돈을 받고 5년씩이나 마음에 짐이 되었다는 면장님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면장님은 이제 무거운 짐을 벗어 홀가분하실 터인데 저는 어찌 한답니까? 했더니 빙그레 웃으신다.

누가 마음에 빚이라고 그리하신 답니까? 감사와 고마움과 진실로 그 상을 받을 만 했던 분이구나 싶어 오후 내내 마음이 뿌듯했다. 면장님은 무거운 짐을 벗어 홀가분 하실 터인데 저는 어쩐답니까?

출처 : 임실문인협회
글쓴이 : 소원/김여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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