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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야기

[스크랩] 남도의 봄바람

by 운경소원 2009. 2. 25.

남도의 봄바람


김여화


 입춘지난 이른 봄바람이 살랑대는 선암사 가는 길 매표소를 지나, 개울을 따라 산사로 들어가는 길은 오랜 가뭄으로 뽀송뽀송 길이 하얀빛이다. 얼음 녹은 물소리는 승선교 앞에 가서야 들을 수 있고 봄기운을 자랑하는 싱그러운 물소리의 합창이다. 봄을 준비하는 계곡의 물소리는 두꺼운 옷차림을 답답하게 하고 얼마나 걸었다고 벗어던지고 싶은 마음이다.

승선교를 지나고 삼인당 동산에 새파랗게 겨울을 난 꽃무릇을 보면서 등산로 입구에 섰다. 산행은 조계산 주봉인 장군봉으로 올라서는 길을 잡았다. 중간 큰굴목재에 올라 장군봉을 오를 것인지 바로 보리밥집으로 내려 갈 것인지 일단은 올라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왜냐면 산행에 익지 않은 나 때문이라는 걸 인산선생님은 강조하셨다. 즐거운 산행이 고행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시다. 선암사를 옆으로 끼고 올라가는 길은 하늘로 쭉쭉 뻗은 삼나무가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남도는 봄바람도 다르다. 우수를 며칠 앞둔 산자락의 바람은 봄이라는 이름이 붙어 새살거리는 것이 참으로 기분이 좋다. 조계산 자락에 있는 선암사는 여러 차례 다녀갔지만 선암사를 두고 조계산으로 오르기는 처음이다. 서쪽의 산자락에는 송광사가 있고 선암사 쪽에서 오르는 길은 산행하는 사람들도 길이 좁게만 느껴진다. 조계산을 오르려면 여러 방향 등산로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등산로가 선암사와 송광사를 넘어가는 길이라는데 우리나라 삼보 사찰 중 하나인 웅장한 송광사까지 간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처지고, 태고총림인 선암사에서 굴목재라는 만당을 지나 내려가 맴산골이라는 곳에 보리밥집이 있어 오늘 산행의 목적지다. 저 옛날에는 그곳이 주막이었다고 하는데 산행에 제일 약한 내가 따라갔으니 일정은 보나마나 힘들 것이다

 장군봉의 높이 884m. 선암사 뒤편으로 올라가는 길은 산죽(조릿대) 군락이고 쭉쭉 뻗은 굴참나무 숲 아래로 단풍나무가 적당히 하늘을 찌를 듯 한 참나무의 중간쯤에서 멋진 풍광을 보여준다. 가을 단풍이면 더 아름다웠을 것을 겨울 산 숲속에서 참나무 사이사이로 마른 잎을 매달고 도열한 단풍나무들이 그런대로 붉은 색을 간직한 것이 보기가 좋다. 아마도 굴참나무만 저렇듯 숲을 이루고 그 아래 단풍나무가 없었더라면 그도 빼어난 풍광은 아니었을 것이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뻗은 능선이 동서로 나란히 대칭을 이루고 있는 이곳, 본래는 동쪽의 산을 조계산이라 하고 서쪽의 산을 송광산 이라고 했으나, 조계종의 중흥 도량산이 되면서 조계산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송광산 이라고도 한다했다. 수림이 다양하고 울창하여 전라남도 채종림(採種林) 지대로 지정되어 있다고 했다. 나무꾼은 산에 가면 나무만 보인다고 했던가, 내 눈에는 아름드리 참나무 잘생긴 저 나무를 베어 표고버섯 재배용으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혼자 웃었다.

  공원 면적은 27.38㎢이다. 봄철의 벚꽃 동백 목련 철쭉, 여름의 울창한 숲, 가을 단풍, 겨울 설화 등이 계곡과 어우러져 사계절 모두 독특한 경관을 이룬다는데 나는 수년전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선암사에서 수양벚나무의 열매를 주워 다가 씨를 뿌려 그게 지금 여러 해 자라고 있다. 또 초파일이 돌아오는 어느 해 저녁 예불 시간에 큰북을 치는 스님을 만날 수 있어서 기쁨이 두 배나 더 했던 추억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앞질러 올라가고 우리는 너덜겅을 돌고 돌아, 바위를 지나서 약수터에 이르고 거기서 쉬었다가 다시 옆으로 덜겅을 돌았다. 어딘가 잿만당에 당도하니 많은 사람들이 먼저 와서 쉬고 있다. 거기 쉼터에서 장군봉은 800미터라고 하는데 일행 중 한분만 장군봉으로 오르고 우린 내려가는 길을 택했다. 골짜기 바탕을 내려오는 길은 꽤 먼 길이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넓은 분지가 나오는데 바로 이곳이 맴산골이라한다. 보리밥집으로 유명해서 와상에 앉은 사람들은 산행후의 열기를 동동주로 식히고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선암사로 가기위해서는 2,7키로를 다시 산에 올라 넘어가야 한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동동주는 마시지 않았지만 다시 산에 올라 통나무 계단을 끝없이 올라가면서 현기증에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압박감으로 겨우겨우 잿만당에 올라 시원한 남도의 조계산 봄바람을 만끽한다. 훌훌 털어버리는 묵은 때 같은 피로는 살에 닿는 바람이 부드럽게 만져주고 이제는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는 안도의 숨을 후유 하고 쉬어봤지만 사실 선암사 까지는 꽤 먼 길이라는 걸 알기는 그리 오래지 않았다.

 푸른 삼나무 숲에 알몸으로 서 있는 나무는 마치 눈꽃이 핀 듯하고 잘 자란 삼나무 숲에서 뿜는 푸른 광채는 가히 장관이다. 조그만 원두막에 앉아서 나는 하늘을 찌를 듯 서있는 푸른 숲을 마냥 바라보고 앉아있었다. 일행이 다 내려간 뒤에야 혼자서 털신털신 내려와 선암사 경내로 향한다. 선암사의 깐뒤를 아니 보고 가랴? 일행 중 세 사람만 선암사 뒷간이라고 쓴 해우소의 대들보를 보러 올라갔다. 자연의 곡선을 이용하여 만든 선암사의 해우소, 뒷간, 처음에 나는 이 글자를 깐 뒤로 읽었다. 보통의 사찰에서는 화장실을 해우소라고 썼지만 이곳은 뒤깐이라고 썼기에 어머니와 난 한참을 거기서 글자를 읽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웃던 추억이 떠오른다.

  언제보아도 정이 가는 깐뒤, 나는 그곳에 갈 때마다 뒤깐을 이용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말씀이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아도 안에서는 밖의 동정이 다보인 다고 하셨다. 더운 여름날에 그곳 뒤깐엘 가 보아야 시원한줄 안다고 하시던 말씀, 이번에도 나는 뒤깐의 바람을 맞이하지 못하였다. 해우소에서의 맞는 바람은 얼마나 시원할까? 그저 짐작만 하면서 선암사를 뒤로 두고 내려온다. 이제는 다리도 마다하는 길 터벅터벅 억지로 걸어 내려오는 우리 세 사람을 먼저 내려온 일행은 30분 이상 기다렸다고 한다. 선암사 주차장에서 맞는 조계산 바람, 골짜기를 타고 내려와 어께동무 해주는 남도의 봄바람은 귀엣말로 속삭인다. 다시 오소!

출처 : 임실문인협회
글쓴이 : 소원/김여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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