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구십살이래 김여화 처음에는 낯설어서 쭈뼛쭈뼛 했고 뭐든지 물어보면 몰러라고 하셨던 분이다. 어제는 우리가 갔더니 자리에서 누운 채로 그러신다. “나 90살이래. 내년이면 백 살이여” 할머니 내년에는 구십한살이여. 라고 했지만 할머니는 아니라고 우기신다. 분명이 아들 길동이가 올해 엄니가 구십 살이라고 했응게 내년에는 백 살이라는 말이다. 할머니의 생년은 17년생이시다. 말하자면 올해 아흔세 살이 되건만 할머니는 당신의 나이도 가름하지 못하신다. 어쨌거나 노인은 백 살이나 먹도록 살아서 뭐하느냐 그 말씀이시다. 얼른 죽어야 허는디 안죽응게 그게 탈이라는 말이다. 노인이 전에는 말도 섞지 않으려고 하시더니 오늘 따라 말씀을 많이 하신다. 아직도 머리는 쪽찌던 머리로, 길러서 고무줄로 묶어야 하는데 요새 설 쇠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시니 자연 머리는 산발을 해서 귀신형용이요. 얼굴은 검버섯이 피고 시꺼멓게 그을린 살빛은 구리 빛이다. 날이 푹하면 일어나 바깥에서 된잔거리지만 갑자기 추워진 요새는 어디가 아픈지 어제도 꽁꽁 앓고 계셨다. 아들한테 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영양제라도 맞게 하면 훨씬 기운을 차릴 거라고 했지만 노인이 고개를 절래 절래 마다신다. 병원은 안 간다는 말이다. 왜 병원에 안 가려고 하느냐 물으니 얼렁 죽어야 헝게 갈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할머니를 설득하고 아들을 설득했지만 결국은 병원에 가시는 건 포기하고 말았다. 그 대신 할머니 옆에 앉아서 말벗이라도 하려는데 오늘도 노인의 말씀이 백 살이나 먹기 전에 죽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손을 마사지하려고 잡아보니 가죽뿐이다. 어쩌면 이렇게 살가죽만 남게 되었을까 싶을 정도로 팔은 막대기처럼 잡힌다. 핏줄은 흐물 거릴 정도로 살갗에 나와 있고 뿌글거리며 말로 다 표현 할 수가 없다. 발을 보아도 그렇다. 뼈를 감춘 것은 겨우 얇은 종이 같은 피부다. 그 종이조차도 아주 부드럽고 풀기 없는 종이다. 아니다 비닐막 같다고 해야 겠다. 비닐처럼 투명하지 않아서 뼛속이 보이지 않아 그렇지 살갗은 마치 비닐이다. 얼굴에는 겨우 살비듬이 붙어있다고 해야겠지만 검의튀튀한 살결에 검버섯도 있다. 어느 날은 얼굴빛이 좀 밝아 보이나 했지만 거의 구릿빛이다. 얼굴빛이 검은 것은 영양상태가 좋지 않다는 증거일 것이다. 제때 끼니를 챙기지 않고 그렇다고 영양분 있는 죽을 따로 끓여주는 것도 아니고 고기를 먹게 하여 근력을 돋우는 것도 아니다. 밥은 아들이 해 먹는다고 하는데 아들 역시 깔끔하지 못해서 우리는 갈 때마다 이불을 털고 방청소를 하지만 며칠 후 다시가면 새잡이다. 날이라도 풀어져야 할머니를 모시고 목욕이라도 하자고 조르겠지만 그도 안 될 형편에 참으로 딱하기만 하다. 구십 살이 넘었으니 백 살이 오기 전에 죽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신다. “멀라 추운디 또 오고 또 오고” 우리들에게 오지 말라는 말이다. 할머니 죽지 말라고 온다고 하니 피식 웃는다. 할머니가 웃는걸. 처음 보았다. 이제는 우리들에게 익숙해 졌다는 말이다. 함께 웃으면서 죽는걸. 내 맘대로 하는 거냐고 말하니 “그려 아먼.” 또 웃는다. 그 웃는 모습도 참으로 가련하다. 크게 입을 벌리고 웃는 것도 아니고 소리를 내서 웃지도 않는 것이 이가 보일까 염려되시는지 입술도 오므린 채로 웃는 그 모습은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정도로 애처롭기만 하다. 누가 이 노인을 이처럼 가련한 노인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아랫집 아주머니 한분은 이 노인이 밥도 안 해먹게 된지 오래라고 하지만 그래도 당신이 일어나 마루를 쓸고 걸레질을 했다고 하는걸 보면 믿을 수도 없다. 산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조차 없는 그런 삶이다. 어제는 빨랫감을 한바작 이나 싸가지고 왔는데 조카가 설에 와서 후질러 놓은 옷들을 빨아달라는 주문이었다. 그것도 노인은 전혀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고 아들의 말이다. 옷을 갈아입으시라고 아침부터 잔소리를 했지만 여태 그대로라고 아들조차도 짜증난다는 말이다. 그저 누워 있다가 날이 풀린 듯싶으면 일어나 바깥바람을 쐬고 아니면 다시 누워버리는 것이 노인의 일과다. 물론 끼니도 거르기 일쑤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노인은 일부러 얼렁 죽기 위해 안 먹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노인이 안다고 하는 건 거의 없다. 하지만 어떤 때는 우리들의 말귀를 알아듣고 대꾸를 하시기도 한다는 것이다. 제대로 생각이 나시면 장가 못간 아들이 가엾다는 말을 하시는걸 보면 분명 어미마음이다. 백 살이 되기 전에 죽어야 한다고 믿는 노인, 가슴까지 시려온다. 이 노인은 장가못 간 아들을 두고 어찌 눈 감으려는지 시키는 대로 말도 안 듣는다고 궁시렁대면서 아들은 담배연기만 마당 끝으로 뿜어댄다. 이 모자를 위한 나의 도움은 어디까지일까? 별스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한계를 두고, 아, 나는 행복하다고 다짐한다. |
'글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누가 마음에 빚이라고 다 그리하랴? (0) | 2009.06.07 |
---|---|
[스크랩] 남도의 봄바람 (0) | 2009.02.25 |
[스크랩] 김여화 수필 읽기 (0) | 2009.02.22 |
[스크랩] 청학동 (0) | 2008.08.20 |
[스크랩] 전대팬티 (0) | 2008.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