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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야기

[스크랩] 청학동

by 운경소원 2008. 8. 20.

청학동 


 김여화


  청학동, 생각만 하면 어느새 두방망이가 내 가슴팍을 다듬질 한다. 비탈길을 따라 삼신봉 중턱에 닿으면 오보라기 앉아 선경에 든 청학동, 햇살에 비치던 맑은 살결의 신참수자도 이제는 불혹이 넘었을까? 조각난 추억의 필림속에 다시는 오지 못할 그리운 얼굴들 죽음의 언덕을 넘어 떠오르지 않은 얼굴이 여럿이다.

  솔바람 소리 휘돌던 연못가에 눈 속이고 나누던 정담은 아직도 귓전에 맴돌고 졸졸거리던 청학동 물소리는 묵계저수지에 모여 지금도 도란거리는지

공단같이 쌓아올린 우리들의 사랑은 어느 곳에 제살붙이 찾았는지 그립고 그리운 간절한 보고픔도 젊은 날의 추억으로 날려 보내고 백발성성할 얼굴 그려보며 내 청춘은 하동 앞 강물 속에 살을 섞는다.

  언제 다시 두 손잡고 오자던 약속은 간데없고 세월 잊은 청학동 숲엔 마른삭정이만 반길 것 같아 나는 아직도 청학동을 찾지 못한다. 벌써 몇 해인가?  삼신봉 아래 수많은 돌탑이 도열하고 거기 동그란 맷돌이 하나가 되어

가지런함 속에 둘이 되어 세상의 법리 속에 갇힌 선사들이 살아가는 곳, 솟대 끝에 앉은 나무오리가 산 아래 올라서는 인간의 발길을 더듬고 차곡차곡 쌓인 맷돌 난간에 다람쥐가 노닐던 곳이다. 거꾸로 박힌 나뭇등걸에도 살아 숨 쉬는 선사들의 혼이 담겼던 곳이다.

  철 따라 피어나는 선계의 아름다움은 여인의 유연한 곡선인양 용허리로 꿈틀거리고 돌멩이로 쌓아올린 탑신위에 맷돌은 천상의 계단처럼 돌 꽃으로 피어난다. 절제된 동그라미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어 쌓아올린 돌과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고 절구가 물구나무를 서면 탑신이 되고 돌확을 마주 덮으면 우주로 태어난다. 저 수많은 돌멩이가 선사들의 움직이는 수행으로 꽃이 되고, 탑이 되고 용이 되어 서 있는 삼성 궁에 다시 갈 날 언제인가?

  함께 했던 그리운 사람들은 간 곳이 없고 홀로 이 밤에 눈 감으니 햇살에 비치던 선사들의 미소와 태극 연못에 빠진 둥근 탑과 푸른 하늘이 그립고

탐방객을 맞던 징소리가 그립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거늘 청학동을 찾았던 그 여름이 몇 번이나 다시 왔다 갔는지 셀 수가 없다. 그저 아련한 그리움만 남아있는데 가슴속에 남아 있는 청학동에 대한 영상은 처음 그대로 영롱한 빛이되어 무지개처럼 떠오른다.

  청학동은 미지의 세계였다. 먼 옛적에 들었던 전설 같은 이야기로 간직했다가 그곳을 찾은 것은 여름날, 지리산 기슭에 칡덩굴과 그 잎이 유난히도 번들거리고 매미가 한낮의 졸음을 쫓던 날이다. 서른 명도 넘은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삼성궁앞에서 징소리를 내고 우리를 반겨 맞이하던 수자들의 안내를 받았었다. 그때 소개 하던 신참 수자의 해맑은 얼굴이 떠오른다. 낭랑한 글 읽는 소리가 들린다. 가만 앉아서 생각만 해도 그 모습은 참으로 묘한 감동으로 다시 살아난다.

  그때 우리는 신단의 나무아래서 시간 내어 다시 오자고 했건만 그 이후 여태 가지 못하고 산다. 아름다운 곳, 돌, 나뭇가지조차도 가지런하게 하지만동적인 수행자들의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느린 듯 한 그들의 행동과 나긋한 말씨에서 평화를 만끽하게 해 주었던 기억이다. 세상에 그보다 더 편안하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곳은 선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매혹적인 돌탑들의 곡선이 그리도 아름다워 보인 것은 왜 였을까? 멧돌이 맨위에 올려졌든 돌확이 올려졌든 둥그스름한 돌탑은 저마다 각기 뜻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청학동을 안내하는 사진첩에는 그 곳의 사계절을 담아서 그곳을 다녀온 기억을 추스르게 하기에 아주 좋았다.

  꽤 비쌌던 그림책은 십 몇 년이 흐른 지금도 다시 펼쳐보며 추억을 되돌아보기에 너무나 좋다. 내 추억의 그림자는 수북이 쌓인 먼지 속에 찹찹하게 쌓여있다. 그립다, 가고 싶다. 청학동에 언제 다시 가 보려나?

맘맞는 사람들끼리 다시 찾자 약속했던 날들은 많은 날이 가 버리고 세월의 이편에 서 있는 나는 초로의 길에 접어든다. 돌아보면 참으로 아름다웠던 추억의 숲길이다.

  그시절 함께 했던 이들의 얼굴을 그려보니 모두 할아버지가 되었고 할머니가 되었다. 그중에 몇은 이미 우리들의 기억속에서 조차 지워졌다. 이름도 떠오르지 않은 사람들이다. 언제 다시 가보나? 그리워라 청학동...


출처 : 임실문인협회
글쓴이 : 소원/김여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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