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錢帶)팬티 김여화 돈을 넣어 허리에 두르고 어른들이 먼 길을 떠나시며 조심스러워 하시는걸 많이 보았다. 예전에는 장터에 가면 장사꾼들이 허리에 전대를 두르고 손님이 만 원짜리를 주면 거스름돈을 그 전대에서 꺼내어 주곤 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분들은 지금도 앞치마를 두르고 거기 큰 주머니가 달려 있는 것이 보통이다. 엊그제 전대가 하나 필요해서 잡화를 팔고 있는 형님 댁에 전화를 해 보았다. 예전에는 그냥 허리에 두를 수 있는 끈을 달고 네모지게 주머니를 만들어서 (zipper)지퍼를 달아 만든 전대가 참으로 요긴하게 잘 쓰였다. 내가 시집와서 얼마 되지 않아서 곧잘 이 전대를 만들어서 형님들께 드렸는데 촌에서 집에다가 돈을 두고 들일을 나가면 더러 손짓이 거친 아이들이 마을에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어서 이 전대가 꼭 필요했다. 특히 큰댁형님은 그때만 해도 담배를 파는 담배면허가 있기에 손닿는 경우가 많아서 여러 번 좀도둑의 피해를 입었다. 내가 전대를 만들어 드렸더니 형님이 동네에 다른 분들에게 자랑을 하게 되었고 여러 형님들이 나도 하나 만들어 주소 주문이 많았다. 동네에는 일가형님들이 많아서 너도 나도 내가 만든 전대 갖기를 원하셨다. 이 전대는 반드시 부드러운 공단 천으로 만들면 허리살갗에 닿아도 부드러워서 용이하고 전대를 찼는지 안 찼는지 모를 정도로 좋다고 하시어서 자주 전대를 만들었다. 친정오빠가 옷을 만드는 공장을 했는데 거기서 가지고 오는 자투리 공단천이 항상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고 이제는 전대도 필요 없이 인터넷뱅킹으로 이체만 하면 끝나는 그런 편리한 세상에 살게 되었는데 보통 할머니들이 이러한 전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더 편리해진 것은 요새는 부드러운 순면 팬티에 이 주머니가 달리고 지퍼로 채울 수 있는 팬티 전대가 유행이다. 몇 년 전에 나도 미장원에서 머리를 하다가 이 팬티를 파는 장사를 만났다. 노인들 사다드리면 좋아하신다는 말을 듣고 지퍼가 달린 팬티를 친정어머니께 사다 드린 적이 있었다. 그것도 만원에 석장이라고 해서 싸다고 생각하며 사다 드렸는데 몇 달 전 할머니한분이 데리고 있는 손자가 손버릇이 있다하여 현금을 두둑이 이렇게 팬티에 달린 지퍼달린 주머니에 넣었는데 너무 많이 넣어서 지퍼가 잘 닫히지 않는다하여 허리춤을 푸르고 앉아서 애쓰시는 걸 보고 짝꿍하고 둘이서 박장대소하며 웃었다. 할머니가 가지고 있는 돈은 얼른보아도 백만 원이 넘어보였다. 나는 할머니가 왜 현금을 이렇게 많이 가지고 다니시냐고 핀잔을 하면서 돈을 차곡차곡 잘 넣어드리고 지퍼를 닫아드리니 그제야 할머니가 후유 하시며 바르게 앉아 사정을 말씀 하신다. “집에다 두고 손이 닿고서야 후회하면 무슨 소용이냐? 그렇다고 내손지 험담을 누구에게 하겠냐? 아예 내가 내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이 상책이다.” 우리는 잘하셨다며 할머니가 지혜가 있으시다고 웃었다. 엊그제 다른 할머니 한분은 현금을 여기저기 손가방에 넣어서 그냥 텔레비전 아래 작은 문갑에 던져 놓으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더구나 할머니는 천 원짜리를 나한테 준다고 만 원짜리를 세고 계시는걸 보고 더욱 놀랐다. 말하자면 할머니의 정신이 좀 이상해 보였고 그대로 두면 누군가 손이 탈 것 같은 예감이 불안해 졌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지퍼가 달린 팬티 한 장을 2천원을 주고 사 가지고 할머니 댁을 다시 방문하였다. 할머니는 그걸 보고는 “아이고 호랭이 물어가네. 멀라 그런걸. 사와” 그러시면서 팬티 값을 주신다고 다시 돈을 챙기고 계셨다. 물론 만 원짜리 두 장이다. 주머니에서 꺼내는 만 원짜리 두 장을 보니 아마도 노인은 천 원짜리로 생각하시는 모양이었다. 다음에 천 원짜리 생기면 달라고 말하고 꼭 이 팬티를 입고 현금을 모두 주머니에 넣고 지퍼를 잠그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돌아왔다. 이 노인은 물론 자식들이 있지만 혼자 계신다. 저 지난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사시는데 우리가 보았을 때 왠지 정신이 자꾸만 이상해진다. 는걸. 느껴왔다. 돈의 개념이 없는 것도 그렇고, 저렇게 두었다가 잃어버리면 어떻하나 싶어서 여간 걱정이 아니다. 손 탈까보아 미리 예방하는 노인이 있는가 하면 아무데나 던져두는 두 노인을 보면서 오늘도 우리는 늙음에 대해서 생각을 한다. 우리도 늙으면 저럴 텐데 어쩐다냐? 이 할머니야 말로 전대가 필요한분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돈이라는 것은 항상 있게 마련인 것을 옛날 전대와 지금의 전대를 비교해 보니 전대의 변천도 다양하다. 요새는 이 전대도 장사를 하는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비닐로 물이 묻어도 좋은 그런 제품이 있는가 하면 아예 허리에 맬 수 있는 작은 가방도 있다. 내 어린 시절에 아버지는 소를 산다고 임실 장에 가셨다가 소매치기 당하고 낙심하여 돌아오시걸 보았다. 그때는 웃옷 주머니에 넣고 갔다가 소매치기를 당해서 점심도 굶고 왔다며 담배만 피우던 아버지의 근심어린 얼굴이 떠오른다. 그 뒤부터 아버지는 돈을 많이 가지고 장에 가실 때는 전대를 만들어 허리에 두르셨다. 그때는 아기 기저귀나 보자기에 돈을 말아서 허리에 띠를 만들어 두르시고 적은 돈일 때는 양말목에 끼우시고 댓님을 단단히 묶고 가셨다. 아버지께서 발목에 돈을 넣고 댓님을 두르실 때는 돼지를 사러 가시거나 양식을 팔러 갈 때이다. 그럴 때 어머니는 돈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그때는 왜 지금처럼 전대를 만들어 찬 다는걸 생각 못했는지 모르겠다. 미끄러운 보자기는 좋지않다. 전대를 허리에 두르고 장에 가실 때는 더러 나도 임실장이나 관촌장에 따라 나섰다. 어머니는 당신이 함께 가지 않고 나를 졸래졸래 딸려 보냈는데 어린 딸이 무슨 도움이 될까마는 그래도 둘이 간다는 위안에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지난달 외국 여행을 가면서는 현금을 가방의 안주머니에 넣고 가방을 앞가슴으로 두르고 손으로 꼭 붙잡고 다녔다. 그 나라에 가면 소매치기들이 많아서 가방을 뒤로 매고 가면 채간다는 가이드의 말에 행여나 그런 일이 생길까 염려해서이다. 오늘 그 할머니께 전대팬티를 입으셨는지 확인하러 갔더니 할머니는 집에 안계셨다. 할머니가 전대 팬티를 입으시고 마음 편히 지내시기를 빌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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