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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야기

이 봄을 다 너에게 주마(수필)

by 운경소원 2008. 2. 21.
 

 이 봄을 다 너에게 주마


김여화


   필봉의 굿패가 국립극장으로 굿판을 벌이러 가는 오늘 정확하게 말한다면 무자년 열나흩날, 장터에서는 부럼을 준비하는 노인의 분주함이 느껴지고 천원어치 냉이를 비닐봉지에 사들고 올라오는 길에서 너에게 메시지를 받는다. 내일 목욕봉사 가겠노라는. 그렇잖아도 내일 노인들 목욕봉사자가 없어서 걱정을 하던 판인데.

 고맙고 감사하고, 전주서 임실까지 달려와 노인들의 목욕을 도와주고 밥한 그릇 먹여 보내지 못해 잘 가라는 말로 때우고 내 일터로 돌아오는 일이 열 두 번이었구나. 지난 한 해였으니……. 한 달에 한번 날 위해서 우리 팀을 지원하는 너의 봉사는 참으로 눈물겹도록 고맙고 감사하지만 나는 늘 “제 복을 쌓겠거니” 그렇게 돈담무심 해 버리기를 열 두 번이었다.

   한 달에 한번 만나는 반가움을 무엇으로 보답하나 퇴근해서 올라오며 고민하다가 맘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맞다. “이 봄을 다 너에게 주마” 요새 연일 강추위로 뙤약양지가 아니면 눈이 하얗게 쌓여있고 땅은 얼어서 녹지 않았지만 나는 너에게 이 봄을 다 준다는 생각으로 절 앞에 까지 달려 올라갔다.

  생각대로 땅은 얼어서 그렇게 쉽게 봄을 캐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 복덩이 너에게 봄을 주마했거늘 그 정도에 포기할 사람은 아니지. 마을에서 빌려가지고 간 손곡괭이를 들고 나는 흙 색깔과 비슷한 나숭개(냉이)를 눈을 씻으며 캤단다. 지난해에도 그 자리에서 봄을 캐어 여럿이 나누어 먹던 생각에 달려가긴 했지만 사실 절 앞 그 밭은 응달진 곳으로 쉽게 냉이가 보일 리 만무했다. 봄 햇살이 퍼져야 나숭개도 잎이 자라는데 요새 날씨가 하도 추워서 땅바닥에 붙어서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다. 

  그 작은 나물을 캐면서 많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십오 년 전 할머니 한분이 신문지에 싸서 내게 건네준 냉이를 먹으면서 감사해 하던 내 모습이 보인다. 아마 너도 내일 이 나숭개를 가져다가 나처럼 그렇게 감동을 하겠지 싶어 미소를 물어보면서 손이시려워 쏙쏙 애리는 손가락을 흙 묻은 손으로 감싸본다. 누군가 버리고 간 장갑을 한 짝 주워 끼고 맨손보다는 훨씬 좋구나 생각하면서 연신 눈을 씻고 비벼본다.

  그냥 건성으로 보면 거기에 무슨 나숭개냐고 할 정도로 땅에 붙어서 구별이 안 되는 나숭개는 그래도 내가 장에서 샀던 천원어치보다 많이 캤구나. 얼마나 향기가 좋은가. 이 나숭개의 향기는 너의 아름다운 마음에 견줄 수 는 없지만 이 봄을 대신하는 향기로 이만한 게 있으랴 싶다.

  복덩이. 너는 내게 복덩이라고 찍혀있다. 손 전화에도 이메일주소에도 네 이름은 그냥 복덩이야. 얼마나 좋은 이름이냐. 네가 내 곁에 있어 이렇듯 아름답게 사랑을 나눌 수 있으니 말이야. 꼭 사랑이라고 표현해서 그것이 남녀 간의 사랑만 할 수 있으랴? 내가 너를 생각하는 마음이, 네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이렇듯 애틋한 것은 우리의 정이 그만큼 연륜을 쌓아온 탓일 것이다.

  기뻐할 복덩이의 얼굴을 그리며 언 손을 맞잡고 그래도 몇 포기라도 더 캐야 겠다는 생각으로 빌려온 손 곡괭이를 아예 집에까지 가져왔다. 그리고 우리 집 양지쪽 화단 아래서 조금 전 손 시리게 캤던 것보다 더 굵고 뿌리가 매끈한 나숭개를 캤단다. 이 정도면 내가 장에서 사온 것에 비해 열배는 되지 않을까? 나는 이걸 캐면서 기원한다. 이 봄나물을 풋나물로 새큼 달콤 무쳐 먹기를, 튀김으로 만들어 그 향기를 맡으며 먹기를 빌고, 아니면 끓는 물에 데쳐서 무쳐 먹거나 맛난 된장에 바글바글 끓여 먹기를 기도한다. 그 맛을 쇠고기에 비하랴 복덩이 네가 이 봄을 가지가지로 요리 할 것을 기대하면 그저 행복한 미소가 내 입가에 퍼지고 기쁜 마음으로 충만 한다.

  내가 기대하는 것만큼 능히 그런 요리를 잘 해 먹을 거란 걸 알기 때문에  기분이 좋다. 마당에 수돗가에서 두 번 세 번 흙을 씻어내면서 나는 이 봄을 너에게 준다는 생각으로 마냥 행복하였다. 이 봄을 다 너에게 주마. 정말 이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캐는 냉이, 아직은 언 땅에서 뿌리를 뜯기며 캐는 냉이는 캐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행복 할 거란 말이다.

  보름에는 밥도 아홉 그릇, 나뭇짐도 아홉 짐을 해야 한다던 어른들 말씀이 생각난다. 그러니 보름날에 목욕 봉사를 하는 것도 큰 뜻이 있지 않을까?

이번 달 목욕봉사는 대상노인 전체가 참여한다고 했으니 출석율도 아주 좋을 듯싶구나. 언제부턴가 정월보름전에 햇나물을 세 번 먹어두면 좋다는 말을 들어왔는데 근년에는 그마저도 못하고 살아왔다.

  오늘 처럼 햇살이 달라보일때쯤 응달에 흰눈이 녹지 않고 있을때쯤 냉이는 더 진한 향기가 나지. 사실 낮에만 해도 냉이를 쉽게 장에서 사왔는데 너에게 봄을 주겠다는 생각에서 나선 길이다. 생각보다 우리 집 화단 아래에는 조금은 굵은 것들이 많아서 너에게 주고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만큼씩 많이 캤으니 다행이 아니냐. 쉽게 맘먹으면 실행 할 수 있는 여건에 있으니 그나마 나는 행복한 거지? 냉잇국을 끓여 맛나게 먹고 있을 너의 가족을 그려본다. 서울대 합격의 수재 남매를 거느리고 착한 남편과 오순도순 남의 것 탐하지 않고 더 큰 권위 욕심 없이 지극히 평범한 선생님의 아내로 만족하는 너를 보면 그것이 행복한 삶이려니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

 이렇게 냉이 한줌으로 이 봄을 다 준다고 해도 너는 크게 받아줄거라 믿고 있다. 사랑하는 복덩이, 네 별명처럼 너는 복 받을 거야. 이 봄의 큰 소망을 다 너에게 건네며 못다 주는 마음 접어둔다. 다음에 또 펼쳐 주고 싶어서.


*나숭개-냉이

*돈담무심-무심하게, 모르는척, 무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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