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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야기

[스크랩] 까먹기 대장들의 월례행사

by 운경소원 2009. 7. 3.

까먹기 대장들의 월례행사


김여화


  한 달에 한번 치르는 행사가 있다. 올해 3년째이다. 한여름 7월 8월만 빼고는 열 달 동안 이 행사는 계속된다. 재작년 1월부터니까 벌써 햇수로 3년째이다. 처음 센터가 운영되었을 때부터 150여명의 어르신들을 죽림온천으로 모시고 가서 등을 밀고 머리를 감아드리고 점심 한 끼 대접해서 다시 집에까지 모셔다드리는 행사인데 지역에서 선거가 있을 때마다 담당직원들은 곤욕을 치르기도 하는 행사이다.


 팀이 4개여서 주마다 처음에는 금요일로 해 오던 것을 요양대상 어르신이 늘어나면서 올해는 목요일로 날짜를 바꾸었다. 우리 팀은 3조라서 항상 세 번째 목요일이 되는데 우린 매주 만날 때마다 할머니들께 날짜를 말씀드리고 말하자면 해당 주는 월요일부터 화요일, 수요일까지 홍보를 하게 되는데 어제도 만나지 못한 분들은 새벽 6시 반에 수화기를 들고 5분 동안 통화를 시도해서 겨우 할머니와 통화가 되기도 한다.


  오늘은 여럿이 목욕 행사에 나오지 않으셨다. 가까운 분들께 알아보니 한분은 일요일 지나서라고 해서 그러니까 다음 주로 착각하신 모양이다. 하지만 어제 오후에 가서 분명히 내일이라고 했던 분도 안 나오셨다. 내가 모시러 가는 할머니 댁에도 내외가 생각지도 않고 계셨다.


  아침 일찍 당도하니 웬일이냐고 하시는데 목욕하러 가시게 챙기시라고 했더니 까먹었다고 하신다. 할아버지는 아예 느긋하게 오전 낮잠으로 잠들어 계시고 “아이고” 오늘이라고 말했잖느냐고 해도 그쯤 되면 소용없다. 일단 지금 가시게 준비를 하시라고 재촉하고 할아버지의 옷을 챙겨 갈아입힌다. 스스로 옷을 챙겨 입기도 버거운 노인이다. 바지를 추스를 수가 없어 혁대를 채워도 주르륵 내려와 버리고 잠바를 입는 일도 도와주지 않으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오늘은 아침부터 날이 덥다. 땀이 주르륵 하고 항상 그 자리에 나와서 기다려할 어른들이 안 보이신다. 전화도 안 되고. 어제 만나지 못한 분들은 오늘 아침이나 어젯밤에 전화 통화를 해야 하지만 나 역시 까먹기 대장이라 잊어버렸다. 할머니 한분은 지나가다 보니 밭에 계시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 오늘 목욕 가셔야지요?” “이? 오늘이여” 밭에서 들깨모종을 하시던 할머니가 호미를 집어던지고 집에 가서 옷 갈아입겠다며 허둥지둥 나오신다.


내가 까먹지 않았으면 할머니가 저리 서둘지 않아도 될 텐데. 미안한 마음에 집까지 태워다 드릴까요? 했더니 마다 시단다. 내가 갈 길이 멀기에 당신이 충분히 준비 할 시간이 있으니까 어서 다녀오라는 말씀이다.


  나만 까먹는 것이 아니고 할머니들만 까먹는 것이 아니다. 할머니들은 나는 까먹기 대장이라고 하신다. 오늘은 가까운데 사시는 순이 언니도 까먹었는지 내외가 행사에 나오지 않으셨다. 늦은 시간이라 다시 모시러 간다고도 못하고 만다. 신덕의 한분은 처음 이런 혜택을 받으시다가 지난해 일 년은 뼈가 부서져 병원신세를 져서 참여하지 못했다가 올봄부터 다시 참여하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목욕시켜드리고 점심 대접하고 술 한 잔씩 마시고 나들이를 하는 것을 세상사는 낙이라고 하실 정도다.


  언젠가 나와 같은 동본이라고 해서 따져보니 내가 촌수가 높았다. 올봄 어느 날 할아버지가 궁금해서 대문이 열린걸 보고 방문했더니 자동차만 보고도 너무나 반가웠다고 하신다. 우리 팀의 자동차 색깔이 빨간색인데 빨간색 자동차만 보고도 할머니 차라 는걸 알았다는 말씀이다. 처음에 우린 할머니 차라고 하시어 무슨 말씀인가 했더니 내가 촌수로 할머니뻘 되니까 할머니 차라는 말씀이다. 짝꿍은 박장대소로 웃었다. 까먹지 않으려고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손꼽아 기다리신다는 어르신이다. 물론 자식이 있지만 서울에 살고 명절 때나 올동말동 그런 자식들이다.


  까먹는 건 어르신들만이 아니다. 나 역시 까먹기 대장이다. 어제 만나지 못한 분들은 전화를 해서 숙지시켜야 하는데 어젯밤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늦은 밤에 전활 할 수도 없고 난감하다. 이른 아침에 짝꿍이 메시지를 보냈다. 누구누구는 전화 통화를 했으니 기다리고 있을 거란 말이다. 날이 연일 가뭄에 기온이 올라가 목욕탕 안은 숨 막힐 것 만 같다. 하지만 까먹기 대장 어르신들은 그 뜨거운 탕 안에 들어가신다.


  나는 자꾸만 탕 안에 오래있지 말라고 나오시라고 소릴 지르고 할머니들은 괜찮다고 하시며 실랑이를 하게 된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탕 안에 안들어가는것이 좋다고 말리는 편이다. 혹시라도 안전사고 때문이다. 기운이 부치는 노인들이 뜨거운 탕 안에 들어갔다가 무슨 일이 라도 생길까봐 말리는 것이다. 짜장면을 맛있게 드시는 까먹기 대장 할머니들, 오늘도 한 달 만에 만나 회포를 풀며 술 한 잔에 파안대소하신다. 어르신들은 지난날 젊었던 시절 운암장에서 만나, 신평장에서 만나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던 시절을 이야기꽃으로 피워내신다. 서로 쾌쾌 묵은 옛 이야기 보따리를 꺼내어 놓으면 저 할매 시어머니가 날 중신해서 오늘날 요 모양 요 꼴로 산다고 푸념을 하시는데 까먹기 대장들이 왜 그런 기억들은 새록새록 솟아나는 것일까?


출처 : 임실문인협회
글쓴이 : 소원/김여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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