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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야기

[스크랩] 그리워라 빨간 케시미어 내의

by 운경소원 2009. 12. 20.
 

그리워라 빨간 캐시미어 내의


김여화


  남이 갓 쓰고 장에 가면 덩달아서 뚝배기 쓰고 장에 간다는 말처럼 평교님의 내의라는 글을 읽다가 생각난 것이 그 내의 중에 빨간 캐시미어 내복이다. 1968년에 서울 가는 기차를 탔는데 당시에는 남관 역에서 서울역까지 자그마치 열두시간이 걸렸다. 나는 열차에서 시달려 정신이 혼미한상태가 되고 애초에 열 시간 걸린다는 기관차는 두 시간 연착을 해서 열두시간이 걸린 것이다.

 

  낯선 타향살이의 시작이었던 그 시절. 그땐 평소의 선물은 생각도 못하다 가 명절이나 돌아와야 내복을 사서 선물을 한다거나 아님 명절이 돌아와야 머슴 산 세경이라고 할까 돈 몇 푼주면 고향 가는 기차에 몸을 실고 문제의 빨간 캐시미어 내복을 사 가지고 의기 양양 고향을 찾는 것이 통례였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있는 집에서 얻어온 헌옷 중에서 셔츠나 내복을 팔 부분은 잘라버리고 꿰매서 입는 것이 보통이었고 친구들은 그나마도 얻어 입지 못하고 웃옷만 걸친 채 추우면 덜덜 떨고 움츠리고 했던 기억이 난다. 다행이 우리 집은 이모가 당시 서울에서 살아서 이모가 구해다 주는 헌옷보따리가 오면 서로 맞는 옷을 골라 입기 위해 쟁탈전을 벌이던 기억도 아스라이 떠오른다. 너무나 가난했던 시절 우리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농촌의 아이들이 나와 같은 처지였음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여름 내내 부모님 거들어서 동생들 업어 키우고 추석명절에 얻어 입은 분홍색 옥양목 주름치마. 그것마저도 나는 어머니가 바느질을 잘하시어 만들어 입었지만 친구들은 그렇지 못해서 어깨가 으쓱했던 추억이다.

 

  추석에 그렇게 옥양목 치마와 블라우스를 얻어 입고 그 이듬해 설에는 서울에서 명절이라고 고향을 찾게 되는데 서울역에서 줄을 몇 시간을 섰는지 기억도 없다. 다만 서울역 출구에서 기다란 장대를 들고 난장판처럼 서있는 사람들의 머리위로 장대를 가로저으면 키가 큰사람은 그 장대로 맞아 주저앉고 키가 작은 나는 장대가 닿지 않았던 기억만 남아있다.

 

  그땐 업시 살아서 지금처럼 기름보일러를 때는 사람도 없었고 연탄이 전부였으니 농촌에서는 당연히 땔감을 머리에 이어 나르는 것은 보통이었다. 이때쯤이면 뒷산에 올라가 나무를 해서 단으로 묶어 이고 내려오는 것이 일과의 전부였는데 요샌 비닐하우스가 보급되어서 할 일도 많을뿐더러 우리 마을에는 거의 보일러를 놓았는데 우리 집만은 10여 년 전 새로 집을 지으면서 나무보일러를 놓고 기름보일러는 여벌로 두었더니 그동안 기름 값을 많이 절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덩달아 동네사람들도 모두 나무보일러로 바꾸고 지금은 나무도 통나무만 때지 가리나무나 자잘한 나무 단은 소용 닿지도 않게 되었다.

 

  우리 집은 보통보일러를 많이 때지 않기 때문에 거의 내의를 입고 살아야 한다. 내가 어려서 고향 부모님께 사다드렸던 캐시미어 내복 대신 나는 큰아들이 내의를 선물해서 15년 정도 입었던 기억이다. 그건 캐시미어도 아니고내의가 얇포롬해서 겨울에 입으면 다른 옷을 걸쳐 입기에 용이해서 오래오래 애용했다.

 

  캐시미어 빨간 내복보다 값도 비싸고 더 질 좋은 내의을 선물받는것이 요즘이다. 근년에 들어서는 내의을 선물로 주는 사람도 없지만 아무튼 우린내의를 여러 벌 두고 입으며 또 준비해둔것도 여러 벌이다. 포장지를 뜯지도 않은 것부터 해서 예전에는 으레 출향해서 월급 받으면 선물이 내의였지만 요샌 그 선물도 바뀌어서 내의를 선물하는 이가 별로 없다.

  나는 항상 겨울엔 내의를 즐겨 입는데 그 이유는 나이 먹어서 춥다고 하는 것도 어찌 보면 추접스러운 일이다. 옷을 안 입고 춥다고 하면 근천 떤다고 욕할 거 같아서 아무리 추워도 나는 춥다고 움츠리지 않은 편인데 그건 내의를 입었기 문이다. 내의를 입어야만 복장도 따뜻하고 활발스럽기 때문인데 젊은 사람들은 그런걸. 안 입고 춥다고 하니 우린 만나는 사람마다 내의 입으라고 권하는 쪽이다.

 

밖에 나가서 일상생활을 하거나 집안에서 활동하거나 내의는 필수로 생각하는 쪽이다. 기름 값 아껴 아무리 나무보일러지만 나무도 산에 가서 해 와야 하는걸. 어쩔 땐 나무도 아까워서 때기가 망설여지기 때문에 내의를 선호한다.

 

 요즘은 내의도 기능성이라고 해서 여러 가지로 나오고 그 값도 천차만별인 데 그래도 오랜 세월이 지났

지만 빨간 캐시미어 내의와는 다른 거 같다. 그 땐 정말 따뜻하고 그 빨간 내의야 말로 부의 상징으로 여

겨왔었다.   어릴 때는 부모님을 찾으면 빨간 내의를 반드시 사고 또 필수로 사는 것 이 미원이었다. 조미

료 미원을 처음에는 뱀가루라고 해서 먹지 않았던 분들 도 있지만 우린 한봉지 사가면 일년내내 두고두

고 아껴 먹었다는 어머니의 인사를 받은 적이 많다.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내의 입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우리같으면 별도로 운동할 필요조차 없는걸 일

단은 내의회사의 매출이 늘어난다고 한다. 내의 회사도 예전에 어디어디 하면 알아줄 정도로 좋았던 시

절이 있는가하면 요샌 수입품으로 길거리에서 파는 노점도 많다.  백양메리야스, 태창, 쌍방울은 추억어

린 이름들이다. 그 이름 속에 빨간색 캐시미어 내의에 엃킨 추억도 많 다. 그립다 그 빨간 내의가... ...

 

  오늘처럼 겨울눈 내리는 낮, 창을 열고 눈송이 펄펄날리는 풍경에 겨울을 음미하며 낮게 내려앉은 회

색빛 하늘아래 멀리 골짜기를 달려오는 이웃집 누군가의 길손을 기다리는 마음도 평화롭다. 참으로 오

랜만에 즐기는 겨울풍경이다. 펑펑 눈내리는 오후... 그 옛날 겨울의 풍경이 떠올라 미소를 문다.

출처 : 임실문인협회
글쓴이 : 소원/김여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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