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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야기

[스크랩] 파도치던 새터 앞 강물

by 운경소원 2009. 8. 26.

파도치던 새터 앞 강물


김여화


  창 너머 강물이 파도치는 모양이 꽤나 보기 좋다는 편지 한 장,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새터 앞 강물이 파도친다며 사진으로 보여 줄 수가 없어 안타깝다는 말과 함께 전해진 사연. 이후 나는 운암강을 무던히 그리워하며 살았다. 몇 년을 두고 운암강가에서 맴돌며 파도치는 새터앞 강물을 보고 살면 얼마나 낭만적일까 도 생각했고 푸른 물이 넘실넘실 파란 하늘 가을바람에 물너울 일렁이는 모양을 생각으로만 그려보며 운암 강을 그리워했다.

  그땐 휴대전화기가 없을 때이다. 삐삐라는 것조차 없어서 편지를 보내거나 엽서를 보내야만 하는 시절이다. 아마도 90년대 초였던가. 관촌에서 근무하시던 분이 운암으로 전근을 가셨는데 거기서 보내온 편지였다. 연필로 쓴 편지, 예전에 누구나 한번쯤은 주고받았을 편지다. 나는 그때 파도치는 호수를 구경하기 위해서 시내버스를 타고 운암에 간적이 있다. 포장되지 않은 덜컹거리는 버스는 제법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 시절엔 운암에 가면 푸른 물이 찰랑거릴 정도로 물이 차 있었다. 몇 년 후에 운암출신 군수의 특별 지시로 운암 소재지 물 가득했던 호수는 담배를 심고 모내기를 하고 수수를 심는 농토로 변해갔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운암 초등학교에서 바라보면 강물이 시퍼렇게 차 있더니 근년에 들어 물이 마르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여름 내내 큰비가 내려도 운암강 중심부인 마당 벌에 물이 차지 않고 개울물처럼 샛또랑이 되었더니 급기야 올해 들어서는 아예 물줄기가 사라져 버렸다. 어쩌다 웅덩이가 보이고 그 웅덩이마저도 군데군데 있더니 그나마 아예 푸른 초원으로 바뀌었다.

  연일 장맛비로 인해 피해가 속출하는데도 새터앞 운암강은 잡초가 무성하여 오늘은 쌍암리와 기암리로 사양리로 돌아보았다. 신덕에서 내려오는 옥녀동천조차도 개울물처럼 흐르니 사양리앞은 벌판이 되었다. 어느 세월에 마당벌에 물이 차고 잿말에 물이 차서 옛 모습을 찾을는지 짐작 할 수도 없다. 얼마나 큰비가 와야 저 잡초 무성한 벌판이 물색이 그려질지 알 수 없다. 잡초만 무성한 벌판 개망초꽃 흐드러진 강바닥엔 간간이 노랑 코스모스가 피어 그림을 그린 듯 색칠하였다. 내 어린 시절에는 그 꽃을 기생초꽃이라고 불렀는데 요새 사람들은 노랑코스모스라고 부르고 있었다. 강바닥엔 한해살이풀로 이제는 늙어버린 소루쟁이가 발갛게 죽어 있고 강가에 서서 물결치는 호수를 그려본다. 운암강은 여러 번 변했다.

  양발이(외량리) 사람들은 운암 소재지를 새터라고 부른다. 잿말에 있던 면사무소, 학교 등이 섬진댐 수몰로 물이 차 이사 와서 터를 잡았대서 새터라고 부른다. 예전에 운암이 소재지를 옮길 때부터 지금까지 새 터는 건물을 지을 수도 증축 할 수도 없는 규제에 묶여 있다가 올해 들어 소재지를 옮긴다고 야단번석이다. 주민들은 연일 권리주장을 하면서 군청, 도청에서 농성을 해왔는데 지금은 해결이 되었는지 중장비들이 들어서고 소재지를 옮기는 작업을 위해서 기초공사를 시작한 상태이다.

  사량리 앞에는 올해도 여전히 담배를 심었고 그 담배는 벌써 수확이 끝나가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사양리 앞은 좁은 도로였는데 지금은 2차선으로 넓히고 시내버스가 다닌다. 호수에 물이 밭으니 강바닥은 너른 풀밭인데 참으로 을씨년스럽다.

  군수의 특별지시로 댐수위를 낮추면서 갱번은 농사짓기에 아주 좋은 농경지가 되었는데 이제는 댐수위를 원래대로 한다고 해서 운암 소재지가 옮기려는 과정이다. 붉은 깃발이 꽂히고 올 농사를 짓지 말라고 해서 논들을 묵힌 채로이다. 수년전에 처음 왔을 때의 새터앞 강물은 저기쯤이었는데 가늠하면서 자동차로 신나게 달려본다.

  오원천은 장마 통에 붉덩물이 가득 내려가지만 마당 벌은 잡초가 그대로인데 황토가 가라앉고 푸른 물이 될 날을 기다리기엔 너무 먼 일일런지. 하늘의 이치는 알 수 없으니 오늘이라도 집중호우가 내리면 마당벌이나 사량리 앞 새터앞 강물은 찰랑댈 것이다. 그러나 그 비는 상류에서 내려야만 새터앞 풀밭이 잠길 것이다. 참으로 아쉽다. 하도 날이 가물다보니 새터 앞강은 언제 물이 찼던가 싶을 정도로 까마득한 기억뿐이다. 그 옛날 강물은 어리동 골짜기 앞까지 가득 찼었는데 꿈속에서 본 듯하다.

 

 며칠째 집중호우가 쏟아붓고 난 뒤 새터앞 강물이 얼마나 찼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큰 물이지고 사람이 떠내려가 며칠째 수색중인 원천을 지나면서 다시 가는 운암강 기대가 만만이다. 방송에서는 80% 가 찼다고 나오는데 며칠 전 보았던 기억으로 꼭 다녀와야 할 사명감을 가지고 달려갔다. 눈앞에 펼쳐진 장관, 붉덩물이지만 외안날은 다시 금붕어로 변신을 하고 있다. 어쩌면 저 붉덩물은 외안날이 변신하는데 더욱 신비스럽게 하려는 것 같다는 생각에 우리는 회심의 미소로 응수한다. 그래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흙이 가라앉고 옛 모습대로 예쁜 금붕어가 되어 있을 것이다.

  지나는 사람조차도 뜸하던 도로가에 자동차들이 오가는 풍경은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다. 얼마였던가? 전망이 좋은 창가에 앉아서 작은 표주박으로 떠내는 노란 서숙 술에 우리는 취하였다. 얼마 만에 즐기는 한가로운 정담인가? 외안날 중래보 앞까지만 물이 찼을때만해도 마음이 붉덩물에 쓸려나가는 것처럼 썰썰하더니 오늘은 마당 벌, 용당굴에 가득한 붉덩물을 바라보니 우리들의 얼굴에는 절로 미소가 뜬다. 이만 하면 족한 것을 섬진강은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비피해가 늘어가지만 그래도 가득 채워지는 운암강을 바라보니 마음이 부자가 되어간다.

  엊그제 텃논 근처 다리가 떠내려갔는데도 비가 많이와 참 잘되었다는 안도의 한숨이 뿜어져 나온다. 이제 물이 가라앉아 파도 칠 날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새터 앞에도 머지않아 물이 찰것으로 기대가 된다. 이대로 간다면 며칠 후면 새터앞 강물은 예전처럼 될 것이다. 차분히 가라앉아서 옛 추억을 한 장씩 꺼내보려는 나와 같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리라. 강은 강다워야 한다. 물 밭아 잡초 밭이 된 강변은 강이 아니다.  새터앞 강물이 푸른색으로 변할 때쯤 다시 그 곳에 서보리라. 그때 함께 할, 정담을 나눌 사람들을 미리 줄을 대야겠다. 다시 가서 그 자리에 앉아 진한 커피 향을 음미하며 한담을 나누자고.

출처 : 임실문인협회
글쓴이 : 소원/김여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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