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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야기

[스크랩] 이른봄의 향기

by 운경소원 2011. 3. 24.

 


이른 봄의 향기 / 김여화 
산골에 있는 사무실, 번화치 와 산막 두개의 고개를 넘어
달려가 문을 열면 후리지아 향기가 넓은 사무실 가득 차있다.
흐음~ ~후리지아 두 단이 피어나 밤새워 내뿜은 향기를
아침이면 향기요법으로 치료를 하듯 흠뻑 들이키면 참으로 상큼하다.
식목일 산불로 낙산사가 전소된 후 이틀 만에 뿌린
조금의 비가 그래도 대지를 적신 탓인가? 낙산사 산불만 생각하면
코가 벌름벌름 텔레비전에서도 냇내가 나는 듯 홀리지만
후리지아 향내가 가득한 사무실은 여느 때와는 다르다.
엊그제 식목일 장날이라 하릴없이 쏘다니다가
후리지아 두 단을 샀다.


관내에 꽃재배 농가들이 있어 장미나 후리지아, 국화 등
철 따라 꽃 구하기가 쉽다. 이맘때쯤 후리지아를 겨울 비닐하우스에서 농사지어 끊어서 팔고
끝물로 남은걸 한단씩 묶어 천 원씩 팔기도 한다.
후리지아는 첫물은 줄기가 굵고 탐스러워 2월 졸업시즌에는
비싼 값으로 나가다가 봄 햇살이 덥다고 느껴질 이맘때는
끝물로 꽃대가 가늘고 꽃송이도 네댓 개씩만 달린다.


겨울, 우리들만의 구둘 목을 찾으며 안에서만 두런거리던 산골에 풋봄
담 밑에 새촘하게 나물이 올라오기 전부터 아랫동네 후리지아는 노랗게 피어난다.
후리지아가 미릇하게 봉오리를 맺은 비닐하우스를 들여다보며 출근을 하는데
유독 우리지역의 꽃이 향기가 짙고 꽃 색이 진하다는데 자부심도 만만치 않다.
꽃향기 중에 후리지아가 나는 꼭 맘에 든다.
장미도 좋지만 이른 봄에 후리지아 향기는 신선 그 자체이다.


겨우내 묵었던 많은 것들을 훌훌 털고 코끝을 간질이는 이 향기야 말로 장하다.
이는 마치 아련히 잊힌 첫 사랑에 추억 한 조각이
나풀거리며 눈송이처럼 내 가슴에 날린다.
짓눌림 없는 풋사랑, 언제 떠올려도 철없던 시절 가슴 설레어
미소를 베어 물게 하는 새싹 같은 향기를 지니고, 언제나 내 곁에서 있는 듯 없는 듯 후리지아 같은 향기를 뿜어주며
곡진한 믿음을 만드는 사람마냥 그렇게 꽃향기에 휘둘린다.


꽃향기가 천태만상이듯 사람도 그러하리라.
상큼한 향기를 뿜는 경우도 있고 역겨운 향기를 지니고 사람을 꼬드기다가
종내는 역한 냄새로 하여금 불쾌함을 남기고
피해를 주는 사람도 있다.
더러는 향기가 아니라 느끼한 괴로움을 안겨주는이도 있다.
모든 사람이 후리지아 향 같으면 좋으련만
꽃향기는 그야말로 제 각각이다.
천만가지 꽃이 각기 제 향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집 화단에도 여러 가지의 봄꽃이 피어난다.
그중에도 꽃잔디의 향이 진하다.
마당에 들어서면 이때쯤은 향기가 진동할 때인데
지난해부터 꽃잔디가 대부분 얼어 죽고 말았다.
그다음 많은 꽃은 산 괴불주머니라는 꽃이다.
이것은 일부러 심지 않아도 절로 피기에 나는 꽃을 보느라 뽑아내지 않는다.
제비꽃도 여러 가지다. 본시 제비꽃은 그 종류가 많지만
화단주변에는 몇 가지 되지 않는다.
지천으로 피어난 제비꽃이 지고나면 매발톱, 금낭화 등이 꽃을 피우지만
그것들은 별로 향기를 느끼지 못한다.


이른 봄에는 매화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명자나무가 꽃분을 터뜨렸다.
수선화는 겨우 한 송이만 피더니 복사꽃 그늘에 묻혔다.
집안에는 복숭아나무를 잘 심지 않는다.
이는 복숭아나무가 귀신을 불러들인 다해서 심지 않는다는데
우리 것은 꽃만 닥지닥지 피고 열매를 맺을 때는 몇 개만 뿐이다.
그저 꽃을 보기 위한 것이다.


후리지아는 보통은 비닐하우스재배를 하기 때문에 몇 해 전부터
구근을 얻어다 화단에 심어보지만 웬일인지 성공하질 못했다.
그래서 후리지아는 시장에서 사는걸. 즐긴다. 엊그제 행사장에서
노란색의 아마릴리스 두 뿌리를 샀다.
수입종이라는데 집에는 붉은색이 있기 때문에 노란색을 산 것이다.
구근은 화분에 심었다.
백합이나 수선화는 그런대로 살아나는데
아마릴리스 구근은 이듬해 얼어 죽고 만다.
칸나의 구근도 얼어버리면 씨를 밑지고 마는데 그러게 칸나를 가을에 캐다
방안에 두어야하는데 그러하지 못하여 집에는 칸나가 없다.
있을 때는 귀찮을 정도더니 다시 구해서 심어야 할까보다.


우리 집은 임실지역에서도 추운 곳에 해당한다.
그러기에 화단에 꽃들도 추위에 잘 견디는 걸로 골라 심어야만 한다.
무화과나무를 심었더니 해마다 얼어 죽고 봄에는 다시 잎을 피운다.
야생 철쭉은 꽃분이 맺히기만 하면 그새부터 벌레가 지천이다.
이제는 야생화도 약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다.
진드기처럼 늘어 붙어있는 벌레 때문에 꽃이 피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산새들이 지줄 대는 실개천……. 그런 노래가 생각난다.
유난히 화사한 아침에 근처 참나무 가지에 앉아
지줄 대는 새소리 무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침햇살에 맑은 소리는 참으로 청쾌하다.
산기슭에 단풍나무 잎이 햇살을 받으며 새소리와 함께 어우러진다

출처 : 전북사선녀
글쓴이 : 소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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