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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야기

[스크랩] 농촌일기

by 운경소원 2011. 6. 27.

농촌일기/김여화


 


아침나절부터 그 아낙은 지쳐 보인다. 나는 출근하는 길이지만 그 시간 벌써 8시 반이다. 평상시 농촌의 아낙들은 품앗이를 가더라도 7시면 밭에서 일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호락질이라면 더 이르게 밭에 나선다.


 

가끔씩 친구는 출근하는 내게 심부름을 시키는데 전화를 받으면 “아직 안 일어났지?” 가 인사다. 당연하다. 그때는 거의 6시거나 조금 넘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일을 나가면서 전화통화를 먼저 하고 일터로 나가기 때문에 그런 그녀를 탓 할 수도 없다. 일하러가면서 핸드폰을 가지고 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왜냐면 일하다가 전화기를 잃어버리기 일쑤라고 집에 두고 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리 이르더라도 나는 “어, 왜 인제 일어나고 있어” 해야 한다.


 

그러므로 지금 지친모습으로 힘겹게 리어카를 끌고가는 여인네는 내가출근을 하는 시간이면 쉬어야 할 때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얼굴은 힘이 들어 찌등그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뭘 실고 가 길래 저리 힘들어 하는지, 안쓰러운 맘이 차창너머로 들여다보지만 무얼 실었는지 보이지는 않는다.


 

내가 나이가 먹었으니 그녀도 내 나이쯤은 되었으리라.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는 함께 학부형이었으니 말이다. 농사일에 찌든 그녀의 행색은 참으로 말이 아니다. 머리는 풀어 헤친 채로 머리라도 짧게 자르지 나는 속으로 두런거린다. 일하면서 귀찮으니까 모자를 쓰지 않으려면 머리를 차라리 짧게 자르는 편이 훨씬 간단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리어카를 끌고 지나간 길은 물이 흘렀는지 도로에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그러고 보니 도로가에 논이 그 아낙네의 것이었는지 모내기를 한 논에서 실고 가는 걸로 짐작하면 아마도 모를 심고 나서 모춤을 다른 데로 가지고 가는 듯하다. 그런데 모춤이이라는게 이상하기도 하다. 요즘은 모판을 들고 다니면서 모를 떼 우는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긴 모판을 들고 때우려면 번거롭고 무겁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비닐봉지에 모를 담아가지고 다니면서 떼 우는 모습도 더러 있다. 그런데 이이는 어쩌려고 모춤을 가지고 가는 걸까?


 

그녀가 논가에서 무언가 리어카에 싣던 것이 모춤이라는 걸 알게 되니 더욱 의문 이간다. 실고 가는 것이 모춤이라는 것은 실제로 도로에 그려지는 물무늬가 증명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모춤이 있나? 혼자서 곰곰이 생각해본다. 옛날에는 모판을 만들 때 흐트려뿌리고서 반듯이 줄을 긋듯 걸어가면 바로 논에는 모판이 되었다. 모를 찌고, 모를 쪄서 한손에 들고 심기 좋게 묶는 것을 모춤이라고 했다. 모춤을 묶을 때도 특별히 고를 남기지 않고 모를 심는 이가 한손으로 지푸라기를 잡아당기면 바로 풀어지도록 묶어야 했다. 만일 모춤이 얼른 풀어지지 않는다면 누가 잘못 묶었는지 금세 밝혀지고 잘못 묶은 사람은 종일 우세 산다고 했다. 모춤을 묶는 것도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요새는 모춤을 묶을 정도가 아니다. 모판에서 빼낸다고 하드라도 모가 키가 작아서 그렇게 묶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모판이 플라스틱으로 길고 거추장스러우니 모를 뽑아서 모춤으로 묶은 모양이다. 그러니 리어카에서 물이 줄줄 흘러서 도로에 물이 젖은 것이다.


 

남정네는 어디가고 혼자서 저렇게 모춤을 실고 가는지 되게 궁금하다. 모를 떼 우는 일이 사실 쉬운 거 같으면서도 쉽지 않다. 이미 심어진 논은 때우고 가야 하기 때문에 차라리 처음 심는 것만도 못하다. 그만큼 일거리도 어줍고 힘든 일이다. 더구나 아낙이 혼자 하기는 벅찬 일이다.


 

얼마나 논농사를 짓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참 안쓰럽다. 물론 그 집 아저씨도 부지런한분이긴 하지만 혼자서 모를 때우려고 준비하는 아낙네가 참 안돼 보인다. 왜소했던 그녀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 더 작은 아이처럼 보인다. 어쩜 리어카만 끌고 간다고 해도 무거울 정도로 아낙네는 힘겨워 보인다.


 

농사를 짓는 아낙네들은 누구나 그러하다. 그 힘든 일을 남자들과 똑같이 해야만 하기 때문에 일에 찌든 그녀들은 민낯은 물론 보기도 험하다. 오후, 퇴근하면서 도로가 다른 사람의 논에서는 남자 둘과 여자 하나 세 명 이서 모를 때우고 있다. 다른 사람이지만 비교가 된다. 저렇게 놉을 얻어서 해도 힘든데 아침의 그 아낙네는 종일혼자 다 했는지 모르겠다.


 

날마다 출퇴근을 하면서 바라보는 논에는 호밀을 심어서 래핑이 끝나고 공룡알같은 소먹이내핑 덩이는 도로가에 옮겨놓은채로 논에는 모내기가 다끝나고 떼 우는 일도 끝나간다. 고추밭에는 고추 줄을 세 번이나 쳤다. 그분들은 모두 내가 내려가는 시간쯤이면 한바탕 일을 하고 쉬고 있을 시간이다.


 

강냉이가 무릎만큼이나 키가 자란 밭도 있다. 날마다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들판은 쉽게 바뀌어간다. 도로 위에 어떤 논에는 요새 전기 줄을 둘러놓았다. 무얼심었길래? 논으로 침노하는 짐승을 막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무슨 특별한 작물을 심은 건지 언제 시간이 넉넉하면 차를 세우고 올라가 볼 참이다. 요때 즘에는 드물게 소달구지를 끌 고가는 부부도 만날 수가 있다.


 

도시에서도 그렇기는 하겠지만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부부가 합심해서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번 손 이 빠지면 계속해서 일이 밀리기 때문이라는 걸 나는 잘 안다. 그래서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들에서 일하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놉을 얻지 않고 호락질을 하는 집은 그 정도가 더한다. 우리도 늘 그랬으니까. 친구는 집에 들어오면 밤10시라고 했다.


 

날마다 일지를 쓰듯이 써도 모자랄 만큼 농사일은 빠르게 진행된다. 논밭에 심은 작물도 그렇게 커가기 때문이다. 요새 날이 가물어서 그렇지 비가오고나면 고추밭은 정신없이 사람손이 필요해진다. 비바람이라도 불면 쓰러지고 줄을 또 쳐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뭄에 콩난다는 말을 요새 실감하면서 오늘도 또 하루의 일기를 쓴다.

출처 : 임실문인협회
글쓴이 : 소원/김여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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