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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야기

이팝꽃 피는 상월길(전북일보)

by 운경소원 2011. 6. 10.

금요수필]이팝꽃 피는 상월길

김여화

작성 : 2011-06-09 오후 7:12:59 / 수정 : 2011-06-09 오후 7:13:09

전북일보(desk@jjan.kr)

출근 때 마다 물결치는 파도처럼 보였던 호밀 심은 논을 보고 오늘 아침에는 "어?" 하고 깜짝 놀랐다. 어제 늦은 오후 호밀을 쳐 눕혔던 모양이다. 호밀을 소먹이로 말려서 갈무리한 뒤 모내기를 하기 위함이다. 이팝나무는 나날이 무성해지며 꽃봉오리를 키워 가는데 비가 오려는지 바람이 탱탱 마른 논을 가로 지르며 호밀을 말리고 있다. 부지런한 농부는 그새 고추를 심고 지주 대를 세우고 이제는 줄을 치기 위해 이른 아침 밭가에 앉아있다.

오래전에 이맘때 쯤에는 우리도 너마지기짜리 너른 논에 호밀을 심고 저렇게 호밀을 쳐서 말리던 때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예취기가 없어서 그저 낫으로 몇마지기 호밀을 베어 눕혀야 했으니 어깨가 빠지기도 했었다.

상월리로 올라가는 도로는 십여 년 전 이팝나무가 심어졌다. 그 이팝나무가 심어졌던 해, 5월 이팝나무 한 그루를 넘어뜨리면서 자동차로 10미터 아래로 점프를 해서 나무가 죽고 자동차도 다 망가졌다. 그 와중에도 나는 크게 다치지 않고 무사하여 이팝꽃이 피는 계절마다 그때 그 순간을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팝나무가 십여 년이 되자 눈부시게 피어나는데 지금 상월 길에는 꽃이 막 피기 시작했다. 관촌 소재지보다 약 일주일쯤은 늦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이팝꽃이 피는 상월 길을 달려보고 싶다고 해서 약속을 해 두었다. 내가 그 소원을 이루게 해 주겠다고.

내가 밀어뜨린 곳엔 이팝나무 사이가 더 멀다. 항상 그 지점에 이르면 내가 죽게 한 이팝나무를 생각한다. 지금쯤 저 다른 나무들처럼 자랐을 텐데 싶어서이다. 상월리에 처음 오던 36년 전 골짜기마다 봄비가 내려 콸콸 넘쳐나던 도랑이 여러 곳이었는데 지금은 도로를 포장하면서 배수로를 잘 만들어 그런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다.

가로수로 심어진 이팝나무는 이제 제법 청년의 나무로 자라있다. 푸른 잎삭 사이로 늘어진 이팝꽃을 남편은 쌀밥나무라고 부른다. 예전에 상월길 주변에는 야생 이팝나무도 더러 보였는데…….

퇴근 하는 상월 길에는 이팝꽃이 춤을 춘다. 그것도 이르게 피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늦게 피는 나무도 있다. 풀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차창을 활짝 열고 마른 풀 냄새를 들이마신다. 풀냄새는 배고픔으로 이어진다. 호밀로 만든 조사료 내핑은 호밀대를 하루쯤 말려 자동기계를 이용해서 내핑한 것이다. 어떤 아이가 공룡 알같다고 했다던가. 공룡알같은 흰 뭉텅이들은 어림 잡아보니 50여개는 되어 보인다.

지난 겨울 구제역에서 임실은 온전히 견뎌냈다. 그리고 그 소들을 먹일 호밀이 지금 다시 갈무리 되고 있다. 저 건너 친구네 논에 뒹구는 공룡알? 소값이 떨어져서 걱정하던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소값이 오르면 장사꾼들이 오지말래도 찾아오는데 비육소 생체 값이 떨어지니 불러도 오지 않는다며 해먹고 살 것이 없다고 한다.

그 친구는 한우를 50여 마리 기르고 있다. 늘 외양간에 매달린 그녀가 안쓰럽다. 이팝꽃나무 처럼 허리가 길고 가녀린 몸매로 어찌 그일을 다 하고 사는지. 이팝꽃 피는 상월 길에서 잠시 그녀를 향한 상념에 젖는다.

*수필가 김여화 씨는 「임실, 우리 마을 옛이야기」를 펴냈으며, 「아낙에 핀 물망초」·「행복의 언덕에서」 등 수필집을 여러 권 펴냈다.

[금요수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