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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풍경

[스크랩] 배추농사

by 운경소원 2006. 9. 1.
 

배추농사


김여화


“이녀러비가 오랄 때는 안 오고” 

  퇴근 후 농약 통을 짊어지고 김장배추고랑을 누비며 약을 뿌리고 피곤해서 일찍 잠들었다가 빗소리에 깨어 혼자 군담을 하고 있다. 지난 20일 날 심었던 배추 모는 초순부터 묘판에 파종을 하고 아침저녁으로 배추씨가 잘 나오는지 들여다보고 약을 뿌려주면서 행여나 낮에 포트가 마를까 노심초사하며 길렀다.

정확하게는 7월 29일 토요일 휴가를 가기에 앞서 우리부부는 배추씨를 묘판에 심고 마당에 해를 가리는 거치까지 말뚝을 박고 보기 좋게 안전망을 쳐두고 휴가를 남해로, 동해안으로 삼박사일을 다녀왔다. 우리가 휴가에서 돌아 올 때쯤은 당연히 묘상에 배추씨가 나 있어야 정상일거라 믿었다. 보통 배추씨는 심은지 이틀이면 싹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웬일인가 돌아와 맨 먼저 마당의 묘판 먼저 들여다보았지만 파릇하게 나 있어야 할 배추씨앗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그저 바싹 마른채로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럴 수가 있나 너무나 황당한 사건이다. 처음으로 배추씨를 심는 것도 아닌데……. 나는 묘판구멍을 일일이 파 헤쳐 씨앗을 찾았지만 당연히 있어야 할 배추씨는 보이지 않으니 기가 막힐 일이다.

  마침 그날 오후 농약 판매상에 가서 이러저러 했노라 그런데 배추씨가 나지 않았다고 했더니 포트에 들어가는 상토, 즉 흙에 비료를 섞은 것이 나지 않은 원인으로 밝혀졌다. 나는 퇴근해서 올라오고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반드시 상토를 한 푸대 사오라고 하고 원인은 비료를 섞은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것은 남편이 상토를 사오면 돈 들어가니까 한번 사용하고 남아있던 상토를 재사용하는데 거기다 요소성분을 높이기 위해 비료를 섞어서 사용하면 된다고 우겨서 일어난 일이다.

  거보라며 우린 서로 탓을 했다. 그나저나 누구책임을 탓할 겨를이 없다. 일단은 배추씨를 다시 심자고 결론을 내리고 새로 사온 상토를 묘판에 다시 담고 배추씨를 하나씩 심는 일은 이번에는 남편이 했다. 그 잘잘한 배추씨를 하나씩 심는 일이야말로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것도 1440개의 묘판에 한 알씩 심는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두 번째 심은 배추씨는 삼일 만에 백% 올라왔다. 이걸 관리하는데 아침에 출근을 할 때 물을 주고 가면 퇴근해야만 하니 배추가 조금씩 커가면서 낮에도 두어 번 물을 주어야만 하는 고역이다. 다행이 그 무렵에는 징검다리 연휴로 집에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날은 왜 그리도 뜨거운지. 물을 주고 두 시간이 지나면 물기가 마르기 시작할 정도였다. 나중에는 뒷집 형님께 부탁하여 물을 주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

   배추 묘는 그렇게 길렀다. 배추씨를 다시 심은 지 꼭 17일 만에 동생들과 조카들까지 동원하여 배추를 심었다. 해마다 농사를 지어 김장 할 때면 와서 김장을 해 가져가는 동생들에게 올해는 배추 심는 것부터 도우라고 했다. 어떻게 배추가 얻어지는지 알게 하려고, 그냥 쉽게 심기만 하면 먹는것인줄 아는 동생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다행이 배추를 두럭에 심는날은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온다고 예보를 하더니 비는 내리지 않고 날이 흐려서 배추 심기에 아주 좋은 날이다.

  일요일 배추를 심어놓고 월요일은 맘 놓고 가보지 않았다. 설마 하룻밤 새 무슨 일이 날까 싶었다. 화요일 퇴근 후 밭을 둘러보니 황당 그 자체다. 당연히 배추가 두럭에 파릇하게 있어야 할 것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그것도 고랑마다 절반씩 뒷두럭쪽으로 깡그리 없어졌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 아닌가? 배추는 한 두럭에 150여포 기씩 심어졌는데 흔적 없이 사라졌다. 250여포기가…….

  결국 그것은 노루가 월요일 저녁에 다 뜯어먹었는데 화요일 퇴근 후에야 밭에 갔으니. 너무나 기가 막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밭에서 일을 하시던 분이 노루발자국이 있다는 것이다. 그제야 뒷두럭쪽으로 노루발자국이 선명하게도 더구나 위에 논으로 올라가면서 노루가 밟아 놓은 나락들이 망가져 있는 것이 아닌가? 결국 모종이 남아 남에게 주기까지 했던 것을 다시 가져오고 모종을 사오고 배추모를 새로 심었다. 그리고 일주일 날마다 배추모를 때우고 물주는 일이 계속된다. 오늘은 사온 배추모종도 없기에 그만 때워야지 작심을 하고 농약을 했다 그런데 이 밤에 또 비라니…….

  배추 모는 초보자들이 심은 것은 너무 얕게 심어서 물을 주었어도 해만 뜨면 말라서 죽고 게스미가(벌레) 잘라먹어서 죽고 아흐레 동안 날이면 날마다 배추모를 때운 것이다. 오수나 임실, 관촌은 소나기가 와서 해갈을 하는데도 우리 동네는 그나마 비켜만 가니 나는 약이 오를 대로 올랐다.

  농사는 하늘이 도와야지 사람이 아무리 공역을 들여도 안 된다는 이치를 깨닫는 요즘이다. 배추농사 쉬울 거 같으면서도 이렇게 어렵다는 걸 깨달으면서 우리부부는 한탄을 했다. 그래서 일찍이 폐농을 하긴 했지만 남들처럼 쉽게 배추를 사서 김장을 하면 될 터인데 그나마 배추농사를 지어 봉사단에 제공을 하려하니 애초에 많은 양을 심은 탓도 있지만 뭐든 쉽지 않다는 말이다.

  힘들여 배추를 기를 적에는 한포기도 누구에게 주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결국 김장때가 되면 이집 저집 퍼 주는 것이 내소관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힘이 들 때면 군담을 하는 것이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농약 통을 짊어지고 물을 주어야 할지 모른다. 그나마 담배 밭이라서 붕사를 옆면시비 해야만 한다. 그것도 두어 차례 이상 해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담배를 심었던 밭은 배추가 깡치가 박혀 씁쓸해서 먹을 수가 없기 때문에 붕사를 뿌려주어야만 그걸 방지 할 수 있다.

  쉽게 하기 위해 로터리를 치지 않고 그대로 담뱃대만 뽑아내고 배추를 심었더니 두럭에 흙이 말라있어서 날마다 물을 주어도 배추는 목말라 하는 것이다. 에구, 로터리를 치고 두럭을 새로 만들어 비닐을 씌웠더라면 이리 고생은 덜 할 터인데 우리부부는 후회를 했지만 이미 늦었다. 이제는 별수 없이 날마다 물을 주거나 소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엊그제 소나기가 제법 왔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 물주는 일은 끝났는가 싶었는데 이번에는 벌레 때문에 약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지난해는 귀뚜라미가 배추를 잘라먹어서 애를 먹이더니 올해는 노루가 먹어 탈이다. 배추가 김치가 되기까지 손길이 수십 번도 더 가야 하는 농사는 정말 어렵다. 배추는 심은 지 거의 100일이 되어야 수확을 한다. 그래야 속이 차기 때문이다. 그중에 한달 반 정도는 거의 매일같이 들여다보면서 약과 영양제를 뿌려주고 어느 정도 속이 차오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약을 하면 안 되고 벌레를 손으로 잡아주어야 한다. 누가 할 일없으면 농사나 짓자고 했던가? 농사는 고도의 기술이고 요령이고 정성이다.

  우리는 기술도 없고 요령도 없고 오직 의욕뿐이니 될 리가 있겠는가. 참으로 어려운 것이 농사다. 몇 십 년 농사를 지었으면서도 아직도 익숙지 못하고 서툴러서 매번 실패를 하니 아마도 나는 죽을 때까지 농사로 성공은 못할 것이다. 깊은 밤 소나기 소리에 일어나 푸념을 늘어놓는 나, 아이들 말처럼 2% 부족한 것이 확실하다. 내일 아침에 출근하면 옆 직원이

“아줌마 또 일을 빡세게 하셨군요. 얼굴이 부었어요!”

또 이런 인사를 듣게 되겠지.


출처 : 대광산김씨일가종친회
글쓴이 : 소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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