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 등 1945년 광복 전후 전북에선 무슨 일이…의병·학생·농민운동 전개
한말·일제시기 대표적 침략·수탈 표적도
일제의 강점으로부터 벗어난 날과 독립국으로서 정부가 수립된 날을 기념하기 위해 국경일로 지정된 광복절.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기까지 전북에서는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그중 만경강·동진강 연안의 호남평야는 국내 유수의 미곡 산지를 이루고 있다.
이 같은 이유로 전북은 19세기말부터 일제 식민지시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일본의 경제적 침략과 수탈의 주된 표적이 되었던 지역이다.
특히 일제의 침략이 가속화 된 대한제국 말과 일제강점 초기에는 많은 의병장들이 앞장서 항일 의병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 시기 전북에서는 태인의병이 일어났다.
전투경험이 없는 유생과 농민군으로 구성된 태인의병은 비록 활동기간이 짧았지만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있었던 의병운동에 큰 자극을 주었다고 한다.
또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해산 조치로 인해 후기의병이 전국 각처에 조직돼 활동을 전개했으며 전북에서도 활발한 의병활동이 전개됐다.
특히 1908~1909년 사이 전북지역의 의병운동은 통계상 의병의 규모나 교전횟수에 있어서도 전남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활동을 보였다.
이를 계기로 전북 최초의 만세시위가 3월 5일과 6일 군산에서 비롯됐다.
이는 호남 최초 만세시위운동이었고 그 영향은 전라도 전역으로 급파됐다.
3월 5일 군산 만세시위를 필두로 전주·군산·김제 등 도시지역으로 확산됐고 임실 천도교를 중심으로 순창·정읍·남원 등의 지역으로도 확산됐다.
4월 말까지 전북에서 이뤄진 독립만세 시위는 약 80여차례이며 1만3000여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1919년 3월 14일 일본인에 의해 운영되던 군산국립보통학교의 학생 70여명이 동맹해 퇴학원을 제출한 뒤 3월 23일 밤 학교에 방화한 대표적인 학생운동이었다.
전북 각지에서 전개된 3·1만세운동의 한 축을 담당했던 학생들은 일제의 황민화교육이 더욱 강화된 1930년대 이후에는 비밀결사 조직, 맹휴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했다고 한다.
국내 유수의 미곡 산지를 이루는 이 지역은 한말과 일제시기 일제의 대표적인 경제적 침략과 수탈의 표적이 되었다.
이 지역은 일제시기 일본인이 경영하는 농장이 곳곳에 산제해 수많은 우리 농민을 소작농으로 고용했다.
일본인 농장주의 압박과 수탈은 한인 소작농의 격렬한 저항을 불러일으켜 민족투쟁으로까지 승화됐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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