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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보도자료

금요수필

by 운경소원 2014. 1. 17.
오피니언
[ 금요수필 ]

새 학기면 생각나는 책가방
기고 | desk@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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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1.16 23:4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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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여화

텔레비전에 젊은 엄마가 나와 책가방이 십만원 넘는다니 너무한다고 말했다. 나는 젊은 엄마가 여태 까지 책가방이 십만원 넘는다는 걸 몰랐다니 오히려 그것이 놀랍다.

벌써 손자놈이 4학년과 3학년에 올라간다. 새해가 되었으니 당연히 올라갈 것이다. 헌데 손자가 학교에 입학한다고 해서 가방을 사줄까 하고 백화점에서 비싼 걸 사줄 형편도 못되는지라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다. 손자가 원하는 캐릭터는 그래도 중간 정도라고 한다. 나는 가방을 사주는 대신 돈을 이체해주면서 며느리더러 가방 사는데 보태라고 했다.

농촌에서 책가방 하나가 십만원이 넘는다고 하면 믿겠는가? 하지만 할미노릇은 해야겠고 재정은 부족하고 별수 없이 보태주는데 그쳤다. 나는 이미 삼년전에 가방이 십만원 넘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아이들옷이나 장난감이나 무조건 사주는 대신 제 엄마한테 취향을 물어서 사주어야 한다. 물론 옷 같은 것은 절대 사주지 않고, 제철 과일을 정보화마을에서 배달시켜주는 것을 즐겨한다. 가방이나 필통은 아이들이 취향과 요즘 유행하는 선호도에 따라 달라진다.

더구나 텔레비전에서는 십만원짜리가 아닌 최고가 64만원짜리 가방을 화면으로 비춘다. 거긴 40만원이 넘는 것이 보통이다. 이게 말이나 되는가 말이다. 64만원이면 근로자들의 한 달 월급이다. 어떤 아이들이 그런 가방을 짊어지고 다니는지는 모르지만 씁쓸하다.

예전의 우리들은 가방을 가지고 다니는 친구들이 없었다. 농촌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우리학교에서 가방 든 아이를 보지 못하였다. 중학교나 가야 가방을 사주었다. 우린 거의 보자기에 책을 말아서 허리에 두르고 다니거나 들고 다니는 것이 전부였다. 뛰어가다가 풀러져 내리던 책보에서 책과 필통 지우개가 주르륵 쏟아지기가 일쑤였다.

어떤 아이들은 필통도 없었다. 언니 오빠들이 도시로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면서 동생들의 선물은 비싼 지우개나, 필통을 사오는 것도 아주 큰 선물이었다. 진작부터 농촌의 아이들도 메이커의 문구를 사서 쓰고 있다. 내가 사는 면소지에는 유명 문구가 들어온 것이 내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이다. 그것도 큰놈이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다. 그러니까 26년 전이다.

산골에서 전주까지 완행버스가 다녔기 때문에 전주 풍남문 근처에 문구 도매점에 가서 노트나 지우개 연필 등을 여러 권, 여러 타스로 사다 두고 주었다. 메이커의 문구는 비싸기만 했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가고 고등학교에 가면서부터는 가방도 내가 직접 사다주는 것은 끝이 났다. 제각기 알아서 사야했기 때문에 돈만 주면 되는 것이엇다.

그렇게 문구점과 멀어졌다가 손자 녀석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기에 가방을 사려다가 비싼 가방 값에 놀라 나자빠졌다. 새 학기가 다가오면 방송에서도 너무 비싸다고 하면서 특집으로 꾸민다. 비싼 가방을 화면으로 비추면서 말이다.

우리들의 옛날은 책보를 허리에 매달고 산으로 들로 논두렁으로 뛰어다니던 날도 있었다. 봄이면 나물을 캐서 책보에 같이 싸가지고 가기도 했고 돌아보니 50년 전 일이다. 내가 아이들을 초등학교 보낼 때만 해도 손으로 돌리는 연필깎기가 아주 비싼 값이었다. 그거면 최고였다.

책가방들이 이젠 고급화 되다가 사치품이 되어간다. 어른들이 명품가방을 선호하듯이 아이들이 명품 책가방에 눈독을 들인 것이다. 누구 탓인가? 그 부모들 탓이다. 서로 내 아이만은 좋은 것을 가져야 한다는 시기심 때문이다.

보자기에 책을 싸가지고 다녔던 아이들은 지금은 거의 5,60대 어른이 되어서 늙어간다. 지금의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늙어가면서는 무얼 추억하며 살까? 문득 앞으로 50년 후가 궁금해진다.

△수필가 김여화씨는 수필집 〈아낙에 핀 물망초〉 〈행복의 언덕에서〉 등을 냈다. 임실문협 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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