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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음식 연구

[스크랩] 국밥 한그릇

by 운경소원 2010. 3. 29.

국밥 한 그릇- 최 영 욱 (시인)

작성일 : 10-03-11 17:59    

출렁대는 지구를 위로할 그 어떤 단어도 찾아내지 못하고 절망하고 있을 때 꽃이 피었다. 꽃이 곧 필거라는 기다림마저도 행복했다는 어느 시인의 말은 이미 터져버린 꽃봉오리 앞에서 무의미했다. 나무들이 견고하고도 모질게 닫혀 있던 그들의 입을 벌려 새순을 밀어내고 꽃을 피우는 그 순간에도 카리브해 연안은 계속 출렁거리고 있었다. 지구가 환하게 피워대는 꽃들이 우리와는 멀리, 너무나 멀리 떨어진 그들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리란 것을 알면서도 나는 나의 봄을 그들과 나누고 싶어졌다.

 

그래서 우리의 봄도 무난하게 오리라 믿었다. 허나 내 그럴 줄 알았다. 지난 밤 <한국현대문학과 하동>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고 임실로 돌아가던 문인들이 남원을 넘어가는 밤티재에서 연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마도 올해의 마지막 폭설이겠지 하면서도 그들의 안부가 궁금했다.

 

간밤의 숙취를 다스려주기 위해 고마운 친구들이 찾아왔다. 그들과 함께 지난 밤 임실, 구례 문인들이 되짚어 갔던 길을 따라 오른다. 제 몸을 얼리지 못한 강의 경계는 눈 속에서 뚜렷했다. 19번 국도의 나무들은 북쪽의 몸피로만 지난밤의 폭설을 얹고 있었다. 왕시루봉과 노고단, 불무장등의 긴 능선들이 펼쳐내는 3월의 수묵화 한 점에 일행들은 말을 잊었고, 나는 임실로 무사히 돌아간 그들의 반가운 목소리에 안도했다. 이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더운 국밥 한 그릇을 수저로 떠올리면서 모질게도 혹사시켰던 내가 지닌 내장들에게 속죄하면서 다른 동물의 내장을, 그 내장탕 한 그릇에 고개를 처박으면 될 줄 알았다. 구례의 한 식당에서 말이다.

‘형님 식사하러 오셨네요.’
‘어 자네가 여기까지 왔나?’
‘예, 어머니께서 이 집 국밥을 하도 좋아하셔서 가끔 모시고 옵니다.’

졌다. 나는 그 후배 앞에 무릎 끓고 싶었다. 속풀이도, 봄도, 내 안에서 아우성치던 내 졸렬한 시(詩)마저도 화산재처럼 흩어져 버리고, 진정 그 후배 앞에서 석고대죄라도 청하고 싶었다. 그야말로 북풍한설을 자신의 앞섶으로 온전히 받으면서 어머니를 위해 바쁜 걸음을 했을 후배, 같은 아들의 자세에서 나는 영락없는 망나니였고, 불효자였다. 후배가 내려치는 주장자에 호된 벼락을 맞은 나는 그 소의 내장탕을 어떻게 먹었는지도, 그리고 후배와 그 어머니의 밥값마저도 내가 내드려야 된다는 생각도 잊은 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우리들의 모든 어머니들과 아들들을 위해 나는 쓰면서 반성하고, 반성하면서 쓴다. 그리고 그 후배의 밥값을 대신 치르지 못한 미안함으로 그 후배와 그를 닮은 아들들에게 따뜻한 봄 시 한 편 올린다.

봄은
남해에서 북녘에서도
오지 않는다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그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그 매운 눈보라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 속에서
움트리라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눈 녹이듯 흐물흐물
녹여버리겠지
               신동엽의 <봄은> 전문  

오늘 바람은 차고도 세다. 지리산은 온통 눈이다. 서둘러 피어버린 산수유며 매화가 눈 속에서도 의연하다. 꽃의 아름다움으로 꽃의 선함으로 세상을 보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문득 사람 같은 말 한 번 하고 싶다. 이 추위가 물러나면 그래서 모든 꽃들이 제 색으로 춤 출 때 내 어머니도, 친구들 어머니도 모두 모셔 더운 김 송송거리는 따뜻한 국밥이라도 대접해 드려야겠다.
‘글쎄?“. ”몰라, 두고 봐야지?“ 하는 웅성거림으로 내 귀가 벌써 송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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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지리산섬진강권문학연대
글쓴이 : 소원/ 김여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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