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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월리/마을이야기

신흥사 1743년 개금 불사에 이분들 기록이 있어서 담아왔어요

by 운경소원 2017. 2. 15.

40여년 활동하며 불상 조성ㆍ개금
진열ㆍ태원 계보를 계승한 조각승
‘재장’으로 칭송… 조각사에 한획
담양 서봉사 주석하며 영호남 활동


▲ 18세기 중반 상정 스님이 만든 대표작인 1755년 경기 양주 회암사 봉안 목조여래좌상〈사진 왼쪽〉과 부천 석왕사 봉안 목조보살좌상〈사진 오른쪽〉. 사진제공=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

 

18세기 중반에 호남(湖南)과 영남(嶺南)에서 활동한 상정(尙淨, 常淨, 相淨) 스님은 앞 시기를 대표하는 진열(進悅) 스님과 태원(太元, 泰元) 스님을 계승한 조각승이다. 상정 스님은 스승과 마찬가지로 나무로 불상을 제작하거나 앞 시기에 제작된 불상을 주로 개금(改金)하였다. 현재 상정 스님이 수화승으로 만든 목조불상은 전국에 걸쳐 4건 7점이 있고, 불상을 개금한 기록은 6건이 조사되었다.

아직까지 상정 스님의 생애와 조각승이 된 배경에 대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지만, 불상에서 발견된 발원문과 사적기(寺蹟記) 등의 문헌을 통하여 활동 시기와 거주 사찰, 조각승 계보 등을 밝힐 수 있다.

상정 스님은 태원(太元) 스님과 1743년에 전북 임실 신흥사 불상, 적조암 관음삼존삼 등을 개금ㆍ개채한 후, 1745년에 서울 강남 봉은사 영산전 불상을 조성하고, 1747년에 전남 영광 불갑사 대웅전과 1748년에 전남 장흥 보림사 신법당 불상을 개금하였다.

당시 상정 스님은 10여명의 조각승 가운데 세 번째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불사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상정 스님은 수화승(首畵僧)으로 1752년에 경남 사천 다솔사 삼존불상과 지장상을 개금하고, 1755년에 전남 창평 용흥사 상선암 목조여래좌상(양주 회암사 소장)과 용화암 목조보살좌상(부천 석왕사 소장)을 조성하였으며, 1757년에 벽암각성(1575~1660) 스님이 1630년에 중건한 구례 화엄사 대웅전에 봉안된 삼존불을 계초(戒初) 스님과 개금하였다.

당시 화엄사 대웅전 중수, 불상 개금, 후불탱화 조성 등이 동시에 이루어졌는데, 이 불사(佛事)에 참여한 스님은 증명(證明)에 대선사 처관(處寬), 편수(片手)에 쾌연(快演), 불화(佛畵)에 의겸(義謙) 등으로 당대 최고의 지위에 있던 스님들이다. 따라서 불상을 개금한 상정도 이들 정도의 지위와 명성을 지녔던 승려로 볼 수 있다. 상정 스님은 의겸 스님이 제작한 불화에 돌아가신 부모를 추모하기 위해 시주자로 참여하였다.

상정 스님은 1761년 6월 16일부터 8월 7일까지 칭숙(稱淑) 스님, 우윤(宇允) 스님, 태영(泰英) 스님, 최신(最信) 스님, 행안(倖安) 스님, 신찬(神贊) 스님과 경남 합천 해인사 백련암 목조여래좌상(백련암과 거창 고견사 봉안)을 조성하였다.

현재 불상들은 원 조성사찰인 백련암과 거창 고견사에 따로 봉안되어 있지만, 7명의 조각승이 52일에 걸쳐 높이 53cm 정도의 삼존불을 만들었기에 18세기 중반 불상의 조성 기간과 참여 작가 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그후 스님은 1762년에 대구 달성 용연사 극락전 불상을 개금하고, 1765년에 경북 포항 오어사 대웅전 불상을 제작하였다.

그리고 스님은 1767년에 경북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아미타불을 개금하고, 1769년에 경주 불국사 대웅전 삼존과 관음전 보살상을 개금하는데, 사적기에 “도금양공(塗金良工) 호남(湖南) 상정(尙淨)”으로 언급되어 있고, 1771년에 경북 김천 직지사 불상을 개금하였다.

또한 스님은 1774년에 지리산 대암정사에서 중간(重刊)한 〈대방광불화엄경소초(大方廣佛華嚴經疏?)〉 권61과 1775년 〈대방광불화엄경소초〉 간행에 시주하였다. 현재까지 밝혀진 상정 스님의 활동 시기는 1743년부터 1775년까지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발원문과 사적기를 중심으로 상정 스님의 생애를 살펴보면, 스님은 속성이 장(張)씨로, 아버지 장한신(張漢臣)과 어머니 김선업 사이에서 1700년대 초에 태어나서 1730년대 보조화승으로 활약한 후, 1740년대 태원(太元) 스님과 불상 제작과 개금을 주도적으로 하고, 1750년대에는 10여명의 조각승을 이끄는 수화승(首畵僧)으로 활동하였다.

스님은 주로 암자에 봉안되는 중소형의 불상을 제작하고, 호남과 영남의 주요 사찰에 봉안된 불상을 중수ㆍ개금한 것으로 보아 전국적인 명성을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상정 스님은 1750년에 담양 서봉사에서 살다가 1770년대 순창 신광사에 머물렀음을 문헌 기록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상정의 스승인 태원(太元)은 18세기 전반에 활동한 진열 스님과 함께 1713년에 경기 북한산 고양 노적사 불상(고양 상운사 봉안)을 제작하고, 1719년에 전남 나주 운흥사 목조지장보살좌상을 개금하면서 시왕상을 개채(목포 달성사 봉안)하였으며, 1728년에 수화승으로 강원 춘천 청평사 불상을 개금한 후, 1745년에 서울 봉은사 영산전 불상을 제작하여 18세기 전반과 중반을 이어주는 대표적인 조각승이다.

 

 

 

 

 

 

 

 

 

 

 

 

 

 

 

 

 

 

 

 

 

 

따라서 상정 스님의 계보는 자수(-1673-)→성심(-1673-1695-)→진열(-1695-1722-)→태원(-1706-1748-)→상정(-1743-1775-)→우학(-1745-1774-), 계초(-1745-1790-), 봉현(-1780-1790-), 칭숙(-1754-1780-), 계심(-1771-1787-), 진퇴(-1770-1792-)로 이어진다.

특히 1774년에 지리산 대암정사에서 중간(重刊)한 〈대방광불화엄경소초(大方廣佛華嚴經疏?)〉 권61 간기에 “비구 상정(尙淨) 복위 망사(亡師) 취암(就岩) 영(靈) 망부(亡父) 장한신(張漢臣) 망모(亡母) 김씨선업(金氏善業) 양주 영가”와 권62 간기 “비구 우학(羽學) 복위 은사(恩師) 상정(尙淨) 보체”라는 내용을 통하여 스님의 법맥은 취암→상정→우학으로 이어진다.

상정 스님이 수화승으로 만든 대표적인 불상은 양주 회암사에 봉안된 목조여래좌상이다. 이 불상은 1755년에 창평 용흥사 상선암에 봉안하기 위하여 상정(尙淨), 유순(有淳), 우학(宇學), 칭숙(稱淑)이 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창평 용흥사는 〈범우고(梵宇攷)〉에 “전라남도 평창 용구산(在全羅南道昌平 龍龜山)”, 〈가람고(伽藍考)〉에 “현의 북쪽 15리(在縣北五十里)”, 1871년에 간행된 〈호남읍지(湖南邑誌)〉 창평현 사찰조(寺刹條)에 “용흥사는 용구산에 자리하며 궁(宮)의 원당(願堂)으로 종이를 만드는 임무를 담당하였다”고 적혀 있다. 현재 이 사찰은 담양군 월산면 용흥리에 위치하고 있다.

목조여래좌상은 높이가 50.2㎝로, 조선후기 제작된 중소형불상이다. 불상은 약간 상체를 앞으로 내밀어 구부정한 자세로 얼굴과 앉은키의 비례가 알맞은 편이다. 머리는 뾰족한 나발과 경계가 불분명한 육계로 표현되었고, 육계 밑에는 머리 정상부에 반원형의 중앙계주와 정수리 부위에 원통형의 정상계주가 있다. 타원형의 얼굴에 반쯤 뜬 눈은 눈꼬리가 약간 위로 올라갔고, 코는 콧날이 뾰족하며, 입에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다. 따로 제작된 오른손과 왼손은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은 채 엄지와 중지를 둥글게 맞대고 있다.

바깥쪽에 걸친 대의는 오른쪽 어깨에 대의자락이 가슴까지 내려와 긴 물방울 같이 U자형을 이루고, 나머지 대의자락은 팔꿈치와 복부(腹部)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가고, 반대쪽 대의자락은 왼쪽 어깨를 완전히 덮고 내려와 복부에서 편삼과 자연스럽게 접혀있다. 특히 하반신을 덮은 대의자락은 배 부분에서 늘어진 중앙의 옷자락이 S자형을 이루고, 옆으로 4~5겹으로 펼쳐져 대좌까지 길게 늘어진 옷자락 사이사이에 연봉오리가 튀어나온 것처럼 표현하였다.

대의 안쪽에 입은 승각기(僧脚崎)는 가슴까지 올려 끈으로 묶어 상단에 주름이 안상(眼象)같이 표현되었다. 불상 뒷면의 처리는 목둘레에 대의 끝단을 두르고, 왼쪽 어깨에 앞에서 넘어온 옷자락이 대좌 위까지 길게 늘어져 있는데, 가운데 두 가닥의 주름이 도식적으로 표현되었다.

상정 스님이 만든 불상은 18세기 중반에 제작된 불상의 신체비율을 따르고,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이나 대의 처리가 스승인 진열이나 태원 스님이 만든 불상과 약간 다르다. 특히, 스님은 18세기 중반 불상 제작의 수요가 줄어들면서 불상의 개금과 개채 불사에 상당히 많이 참여하였다.

상정과 그 계보에 속하는 조각승이 18세기 중반에 제작했다고 추정되는 불상은 경남 산청 정취사 목조보살좌상으로 전체적인 인상과 대의 처리 등이 같다. 그리고 그의 제자인 계초와 봉현 등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은 전남 순천 선암사 불조전 목조여래좌상(1구), 경기 남양주 흥국사 극락전 목조삼존불좌상, 전라북도 고창 문수사 목조여래좌상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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